추석연휴 해외 여행자의 심리…"조상님 보다 가족"
[ 안혜원 기자 ] 추석을 맞이하는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터미널과 기차역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내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이 북적인다. 제사·차례 등 전통의례를 중시하는 풍조가 약화되고, 휴식을 찾는 바쁜 현대인들이 늘어나면서 명절을 맞이하는 풍경이 급변하고 있다.

추석연휴 해외 여행자의 심리…"조상님 보다 가족"
특히 올해는 연휴 기간이 주말과 이어지면서 5일간 내리 쉴 수 있다. 연차를 사용할 경우 최대 9일간의 장기 휴가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추석을 맞이해 휴가를 떠나는 여행족들이 크게 늘었다.

인천공항공사는 추석 연휴 기간인 13일부터 18일까지 여객수는 하루 평균 16만4391명으로 전년 대비 21.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운항 항공편도 하루 평균 898편으로 전년 대비 14.7%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간 주요 항공사의 국제선 항공권은 대부분 80% 이상(지난 12일 기준) 예매가 완료된 상태다. 대한항공의 국제선 예약률은 89% 수준을 기록했다. 대양주 노선 예약률은 100%에 달했고 유럽 노선이 96%로 사실상 일찌감치 매진됐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에는 미주 노선 예약률이 88%로 가장 높았고 유럽과 동남아, 일본 노선의 예약률도 85% 수준을 기록했다.

저비용항공사(LCC)의 예약률은 90%를 훌쩍 넘었다. 제주항공의 좌석은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일본, 동남아 노선 예약률은 99%에 육박했다. 티웨이항공의 경우 일본 삿포로와 태국 방콕 노선이 예약률 100%를 달성했고 송산과 오키나와도 만석을 기록했다.

이처럼 명절 기간동안 해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여행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 "조상님 보다는 가족"…차례 대신 가족 여행

4남매 중 장남인 김준만 씨(51)는 오랜 고민 끝에 올 추석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20여년 간 단 한번도 제사를 거르지 않던 그였다.

그는 "그간 명절에는 모두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들이 고향에 내려와 차례 준비만 하다 금방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며 "차례상 준비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조상님도 차례도 모두 중요하지만 명절의 형식이나 예식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고 덧붙였다

장남의 제안에 동생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동생들이 함께 설득했다. 김 씨의 남동생 김진홍 씨(45)는 "회사 일에 치이다 보면 해외 여행은커녕 국내 여행도 가기가 쉽지 않다"며 "추석 연휴 기간에 모처럼 휴가를 즐기고, 자주 모이기 힘든 가족끼리 대화도 나누고자 하는 생각에 형제들은 모두 형의 의견에 곧장 찬성했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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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보다는 힐링 '나홀로 여행족'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정 모씨(34) 명절 연휴마다 혼자 여행을 떠난다. 올해는 연차를 내고 9일부터 18일까지 태국 방콕으로 떠나기로 했다. 6개월 전 미리 항공권을 끊어놓은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여행을 즐길 수 있게돼 정 씨는 벌써부터 만족스럽다.

"예전에는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면 결혼은 언제하냐, 승진은 했냐 등 한마디씩 건내는 안부가 스트레스였죠"며 "명절에 혼자 여행을 즐기는 것이 마음이 편해요."

물론 부모님은 서운해하실 때가 많다. 그는 "집에는 당직근무가 걸려 어쩔 수 없이 추석에 가지 못하게 됐다고 전했다"며 "부모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연휴 만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나 힐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 혼자 떠나긴 눈치보여…조카와 여행가는 고모

김해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윤신혜 씨(36)는 초등학생 조카 다연이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추석을 보낸다. 원래는 혼자 여행을 떠나려 했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눈치가 보인 윤 씨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초등학생 조카를 데리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조카와 함께 여행을 간다고 하니 오빠도 딱히 말리진 않았어요. 오빠가 찬성하니 부모님도 마지못해 허락했고요. 저도 여행을 즐기겠지만, 함께 간 조카에게 새로운 환경을 보여주고 견문도 넓혀주려고 합니다."

대학생 박진석 씨(27)와 박승찬 씨(26)는 사촌형제 사이다. 나이대가 비슷해 평소 자주 어울리던 이들은 올 추석 캄보디아로 함께 배낭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가족 친지들이 모두 걱정했지만 사촌형제가 함께 간다고 하니 말리진 않았다.

박진석 씨는 "아마 집에 가게 되면 취업했느냐, 요즘 뭐하느냐, 준비는 하고 있냐 등 부담스러운 질문만 듣게 될 것"이라며 "친척들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나로서는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이어 "스트레스를 받느니 사촌동생과 여행을 떠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혼자 간다고 했으면 부모님들이 말렸을텐데 동생과 함께 여행한다고 하니 안심하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