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지난 7월7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드컴퍼니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지니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와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한경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지난 7월7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드컴퍼니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지니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와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한경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은 오너의 책임 경영 강화를 위해 올초부터 추진돼왔다. 올해 말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를 통해 등재될 것이란 관측이 유력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12일 예상보다 빨리 전격적으로 등기이사를 맡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 결함으로 위기에 봉착하자 오너 경영을 통해 빠르게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2009년 미국에서 대량 리콜로 위기를 맞았던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당시 오너 일가로 창업주(도요다 기이치로)의 손자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전면에 나서 위기 국면을 슬기롭게 타개했다.

◆위기를 오너 경영으로 타개한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리콜을 발표한 지난 2일부터 사실상 위기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주력 제품 하자에 따른 리콜 자체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어지는 배터리 발화와 이에 따른 세계 각국의 사용 중지 권고는 자칫 그동안 쌓은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먹을 수 있다.

문제는 리콜 성공 여부다. 전량 리콜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삼성전자는 최대한 빨리 리콜 문제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우고, 새로운 배터리를 장착한 갤럭시노트7 판매 재개 시기도 최대한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환해준 새 갤럭시노트7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다시 발화하면 신뢰도 추락으로 갤럭시노트7 자체를 단종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이미 2일 1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250만대 전량 리콜을 최종 결정했다. 이 부회장은 다음달 27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등기이사에 선임되기 전이라도 직접 위기 수습을 위해 진두지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은 삼성전자의 위기 돌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위기대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질병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돼 비난 받았을 때 전면에 나서 직접 사과하고 사태 해결을 마무리지었다.

◆삼성도 도요타처럼?

삼성의 이런 행보는 과거 일본 도요타 사례를 연상시킨다. 도요타는 2009년 미국에서 차량 급발진 사태로 960만대를 리콜하고 그 여파로 1937년 창사 이후 최대인 4600억엔(약 5조원)의 영업손실로 위기를 맞으면서 전격적으로 오너 경영 체제로 복귀했다. 창업자 가문 출신인 아키오 사장이 14년 만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당시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도요타 차량에 사용 중지를 권고했다. 도요타는 급발진 문제가 오작동을 유발하는 전자적 결함이 아니라 페달 및 매트가 걸리는 기계적 결함 때문이라고 항변했지만 미국 소비자 단체들은 전자적 결함 가능성을 계속 제기했다. 2011년 미국 교통당국이 도요타의 주장을 인정했지만 도요타는 그 사이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아키오 사장은 취임 직후 위기 수습을 위해 ‘글로벌 비전 2015’를 내놨다. 수익성 제고, 제품력 강화, 신흥시장 개척 등 3대 전략을 담았다. 도요타는 이를 바탕으로 2010년 1700억엔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로 전환했다. 동일본 대지진까지 겪으며 2011년 글로벌 판매량 순위 3위(795만대)로 내려갔지만 2012년 975만대로 세계 1위에 복귀했다.

◆승계 빨라지나

이 부회장이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책임경영에 나섬으로써 그룹 경영권 승계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부친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4년 5월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뒤 2년 반가량 흘러 책임경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 사이 삼성그룹의 경영은 자연스럽게 이 부회장이 주도해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이 회장이 맡아온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룹 회장 승계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지분 문제도 말끔히 정리되지 않았다. 삼성그룹은 2013년 말부터 사업 재편과 계열사 간 지분 이동을 통해 승계를 준비해왔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와 삼성증권, 삼성카드의 지분을 인수해 금융지주회사로 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엔 옛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 합병으로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이 탄생했다.

증권가에선 향후 삼성물산 및 삼성전자의 사업회사와 지주회사 분할, 그리고 이들 지주회사의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 사업회사를 거느리는 삼성그룹 지주회사가 만들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현석/주용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