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 "흑자 빌미로 국고지원 금액 줄여서는 안 돼"

건강보험 재정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넘는 누적흑자를 보이면서, 건강보험의 보장혜택을 확대하는 쪽에 누적적립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보건의료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 곳간에 쌓인 누적적립금은 결국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쌈짓돈으로 조성된 만큼 보장강화라는 형태로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보건복지위원회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건강보험 재정통계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누적흑자는 8월말 현재 20조1천766억원으로 20조원을 돌파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된 무상의료운동본부는 11일 "건강보험은 매년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단기보험'인데, 해마다 막대한 흑자가 발생한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한테서 보험료를 많이 걷고서도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증거"라며 "흑자는 즉각 국민 의료비 절감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정부가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공약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흑자재정을 건강보험 보장강화에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재단 등 61개 단체로 구성된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도 "건강보험 누적흑자액은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로 이루어진 돈으로 현재 60%대에 불과한 빈약한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특히 "흑자액의 극히 일부인 약 5천억원만 투입하면 어린이병원비를 국가가 모두 책임질 수 있다"면서 "당장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 역시 "흑자분은 그에 상응한 보장성 강화에 써야 하는 게 마땅한데, 복지부가 신규로 건강보험 적용 항목을 확대해 보장강화에 쓰겠다는 예산은 2018년까지 7조5천억원에 불과하다"면서 "그토록 많은 누적재정을 남겨서 어쩌자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건강보험이 책임지는 의료비 부담비율로 전체 진료비(비급여 포함) 중에서 건강보험 급여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9년 65.0%에서 2010년 63.6%, 2011년 63.0%, 2012년 62.5%, 2013년 62.0% 등으로 해마다 뒷걸음질하다가 2014년 63.2%로 전년 대비 소폭(1.2%포인트) 상승했다.

이들 보건의료시민단체는 특히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빌미로 국고지원 금액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려는 게 아니냐며 경계하고 있다.

이런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정부는 내년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액을 삭감했다.

내년 지원예산은 올해 지원 금액 7조975억원보다 2천211억원이나 준 6조8천764억원으로 편성됐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보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밑바닥인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사회보장 기능을 강화하려면 국고지원을 지속해서 확대해야 하는데, 정부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며 "누적흑자를 핑계로 국고지원을 축소하려는 것은 국고지원을 규정한 현행법 조항을 무시하는 처사이니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도 "정부의 국고지원액 축소는 사실상 현행 건강보험법을 위반한 것으로 정부는 건보 국고지원 규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건보공단 노조 또한 "정부는 매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를 지원하도록 한 법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국고지원액을 집행하라"라고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