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명란젓도 버젓이 유통…범정부 단속 4년째 '헛심'
식품안전 신뢰도 고작 15%…"실적 챙기기 단속보다 근본적 방지책 필요"


'양잿물로 부풀린 해삼·소라', '발암물질 첨가한 명란젓', '과산화수소수로 표백한 오징어채'….

식품안전에 관한 한국 사회의 불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13년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식품안전 인식을 조사한 결과, 먹거리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은 15.8%에 그쳤다.

불안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39.2%나 됐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도 식품이 안전하다는 답변은 16.1%밖에 안 됐다.

한국의 식품안전 신뢰도는 미국(81%), 영국(65%), 일본(53%) 같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때부터 불량식품을 '4대악'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지만, 체감 안전도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

추석을 앞두고 불량식품이 대목을 만난 듯 활개를 친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은 지난 8일 상한 고기로 떡갈비를 만들어 판매한 정육업자 박모(34) 씨를 구속 기소했다.

박 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운영하는 충북 음성군 금왕읍 모 마트 내 정육점에서 부패한 고기로 떡갈비 20㎏을 제조해 이 중 1㎏을 판매했다가 경찰 단속에 적발됐다.

박 씨는 폐업한 정육점에서 상한 고기 1.35t을 가져와 떡갈비 재료로 보관하다 모두 압수당했다.

박 씨는 악취가 진동할 정도로 심하게 부패한 고기를 잘게 썰어 말린 뒤 향이 강한 양념을 넣어 냄새를 제거하고 떡갈비를 만들었다.

부산경찰청 해양범죄수사대는 7일 왁스와 세제 원료로 쓰이는 심해어 기름치(Oil Fish)를 고급 메뉴인 메로구이로 속여 판 정모(52) 씨를 구속하고 음식점 대표 등 19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정 씨는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8천800만 원 상당의 기름치 뱃살 등 부산물 22t을 구이용으로 가공해 전국 도소매업체와 음식점에 유통했다.

기름치는 농어목 갈치꼬리과에 속하는 심해 어종으로 인체에서 소화되지 않는 기름 성분(왁스 에스테르)이 많다.

지방의 90% 이상이 왁스 에스테르다.

복통, 설사를 일으키고 어지러움과 구토, 두통, 식중독도 유발할 수 있다.

메로는 ㎏당 가격이 2만원, 기름치는 3천원 정도지만 구워서 양념을 곁들이면 식별이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 6일 제천경찰서에 구속된 한과 제조업체 대표 A(59)씨는 국내산과 중국산 쌀 튀밥 50%씩을 넣어 만든 쌀강정을 제조, 판매하면서 국내산 쌀 비중을 78%로 속여 팔았다.

쌀강정 제조에 유통기한이 3년이나 더 지난 식용색소를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부산 사하경찰서가 최근 검거한 수산물 유통업자도 유통기한이 1∼2년 지난 냉동오징어 등 6가지 수산물 6천75㎏을 시중에 유통할 목적으로 냉동창고에 보관하다 적발됐다.

국무조정실과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찰청 등으로 구성된 범부처 불량식품근절추진단 추석 특별단속에는 식품위생법 등을 위반한 전국의 제수·선물용 식품업체 353곳이 적발됐다 .
위반 유형을 보면 원산지 거짓 표시 또는 미표시(182곳), 위생적 취급기준 위반(54곳), 생산·원료보유 기록 미작성(17곳), 허위표시 등 표시기준 위반(12곳) 등이다.

전북 정읍의 A업체는 유통기한이 3개월 이상 지난 한과 11.6㎏과 지난 1월 설에 판매하고 남은 약과, 유과 등 64㎏을 판매 목적으로 보관하다 적발됐다.

서울 송파구 B업체는 냉동했던 국내산 돼지 등갈비를 냉장으로 진열·판매했고, 경기도 안산 C음식점은 스페인산 돼지족발로 조리한 족발 300㎏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팔았다.

송파경찰서는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체에 납품하면서 고급인 아이슬란드산에 중국, 태국 등 저가 키토산을 섞은 업자들을,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중국산 콩자반, 파키스탄산 양념게장, 페루산 진미채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 업자 등을 단속했다.

대구에서는 식용이 불가능한 공업용 에탄올을 첨가해 4억 원 상당의 팥빙수 떡을 제조한 식품업체 대표가 지난달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공업용 에탄올에 함유된 디나토늄벤조에이트 성분은 천식, 피부 가려움증을 일으킬 수 있다.

정부는 2013년 '식품안전강국 5개년 계획'까지 마련해 4년째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불량식품 유통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단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도 드러난다.

단속이 인체에 직접적인 해를 미치지 않는 허위·과장 광고(26%), 표시 위반(15%)에 치중돼 정작 소비자들이 입는 심각한 피해는 막지 못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어린이와 임산부, 노약자 등 취약 계층 보호를 위한 단속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메틸수은, 카드뮴, 납, 비소 같은 유해물질이 불량식품을 통해 어린이나 태아에 흡수되면 치명적인 인체 손상을 가져오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단속보다는 실적 내기용 편의적 단속에 그치는 측면이 강하다.

단속된 불량식품이나 식자재의 회수 및 폐기 처리도 철저히 이뤄지지 않아 또다시 시중에 유통될 위험성도 크다.

치안정책연구소 정웅 연구관은 "먹거리 안전에 대한 불안을 없애려면 팽창제, 표백제 등 화학적 독성물질이 첨가된 인체 유해 식품 단속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화학적 유해물질의 피해는 계절과 관계없이 일어나고 한번 발생하면 대규모 피해를 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k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