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업체들이 대금 지급 압박…선박 압류·대기 길어지면서 선원들 방치 우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이 회사의 해외 주재원과 선원들의 신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주재원들은 대금 지급을 요구하는 현지 벤더(제조·판매업체)로부터 직접적인 압박을 받고 있고, 선원들은 망망대해에서 제한된 생필품으로 기약 없이 대기하고 있다.

회사 자체의 힘으로 해결하기엔 어려운 상황도 있는 만큼 이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의 해외주재원들은 법정관리 이후 현지 벤더나 화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법정관리 신청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31일에는 한진해운의 중국 모 지점에 벤더들이 동원한 용역 무리가 들이닥쳤다.

이들은 건물 1층에 자리를 잡고서 밀린 대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등 위압적인 상황을 조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재원들은 중국 공안의 도움을 받아 대피했다.

주재원들은 현지 영업을 책임지기 때문에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귀국하지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 때문에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재하는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중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사태가 악화할수록 이들이 노출되는 위험도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 곳곳에서 항만에 정박하지 못하고 공해 상에 대기중인 선박 선원들의 상황도 문제다.

현재 대금과 사용료 등을 받지 못한 하역업체, 항만당국, 선박연료 공급업체 등의 작업 거부로 입항하지 못하는 한진해운 선박은 40여척으로 파악된다.

보통 컨테이너선 1척에는 20∼22명의 선원이 승선하는데, 정박 대기가 장기화하면 생필품과 식량이 부족해지고 건강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압류된 선박도 상황은 비슷하다.

선박이 압류되면 현지 항만국 통제에 따라 선박 유지를 위한 최소인원(6∼12명)이 의무적으로 잔류해야 한다.

이들 역시 압류 기간이 길어지면 필수적인 지원 없이 방치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해외에서 억류된 선박의 경우 송환 보험을 활용해 선원 귀국을 돕고 선상필수품 공급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정박 대기 중인 선박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바다 위의 상황은 육지와 같지 않아서 기상이변이나 해적 공격 등 각종 위급상황이 언제 벌어질지 모른다"며 "모두가 현금만 요구하는 상황에서 공해 상에 표류하는 선박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선원들의 안전을 잘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회사의 자체적인 노력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적 차원에서 신변 보호를 돕거나 밀린 대금을 신속히 지급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산·서울연합뉴스) 이영희 윤보람 기자 br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