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서 강연 후 기자간담회…"산업용 전기요금 올리고 가정용은 내려야"
"그린벨트에 저소득 신혼부부 위한 임대주택 짓자"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제원로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2일 한국경제가 저출산·고령화로 장기침체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전 총재는 이날 오전 중구 한은 본관에서 한은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국경제 성장환경 변화와 정책대응'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뒤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박 전 총재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우리 국민이나 정부가 당장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성장의 최대 걸림돌"이라며 "장기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후년부터 우리나라 생산가능인력이 줄어들면 음식점, 주유소, 노래방, 골프장, 세금 등 모든 부문의 수요가 줄어든다"며 "이것이 디플레이션이고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박 전 총재는 또 "한국의 경제 위기는 '성장률이 어떻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그만큼 우리 경제의 활력이 꺼져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발언은 이주열 한은 총재가 최근 저출산·고령화의 위험성을 언급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달 30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인구고령화가 가계부채, 미국의 금리인상보다 대처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정부가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통계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2050년 35.9%로 높아져 일본(40.1%)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총재는 저출산·고령화의 대책으로 정부가 결혼, 출산, 육아, 교육 등에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젊은층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로 주택문제를 꼽은 뒤 "정부는 그린벨트에 신혼부부 전용의 장기저리 임대주택을 지어 저소득 신혼부부가 모두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가계의 실질적인 소득증대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소신도 재차 드러냈다.

박 전 총재는 "중국의 저비용 등에 밀려 경쟁력을 잃은 투자와 수출에 의존해서는 2%대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하다"며 국제경쟁력과 무관한 가계 소비를 경제 성장의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은 선진국 문턱인데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꼴찌 수준"이라며 "앞으로 성장과 복지를 병행하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전 총재는 최근 논란을 빚은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해서도 날이 선 비판을 했다.

박 전 총재는 "한 마디로 한전은 산업용 전기요금에서 밑지고 가정용에서 많이 받는 방식으로 대기업에 보조금을 주고 올해 14조원의 이익을 본다는 것"이라며 전형적인 구시대적 모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고 가정용은 내려 원가를 보상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새로운 성장 엔진에 맞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전 총재는 한은이 중앙은행으로서 독자적인 판단으로 정부와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중앙은행으로서의 목소리도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은이 인플레이션 뿐 아니라 경제성장, 고용, 양극화 등 폭넓은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 관점으로 금리 결정과 가계부채 및 부동산 문제에 대처할 것을 당부했다.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