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트렌드]
인터넷 쇼핑업계, ‘네이버 1위’ 충격…혁신 외면하면 미래 없어

[이규창 IT 칼럼니스트] ‘음성 비서’라고 하면 애플이 만든 시리(Siri)를 떠올리고,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바둑으로 이세돌 기사를 이겼던 구글의 알파고(AlphaGo)가 생각난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진보한 ‘인공지능 음성 비서’라면 단연 아마존의 에코(Echo)를 꼽는다.

아마존은 애플처럼 팬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지도 않고 구글처럼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을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기업이 추구하는 혁신과 진보는 소비자들이 아마존 내에서 쇼핑을 더 많이, 더 자주 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보인다.

멋지거나 선해 보이지 않는 아마존의 혁신은 더 편리하고 더 친절한 쇼핑을 경험하게 해준다. 소비자들의 생활 속으로 쉽게 파고드는 이유다.
혁신 상징된 아마존, 한국은 '쿠폰 경쟁'만
(사진) 판매와 마케팅, 사후관리 및 재고관리까지 위임하는 방식인 아마존 풀필먼트. /연합뉴스

◆ 너무 먼 꿈 ‘한국의 아마존’

1994년 처음 등장했을 때의 아마존은 ‘인터넷 서점’일 뿐이었다. 인터넷에서 책을 주문하면 더 편하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걸 국내 소비자들도 알게 됐다. 그러자 국내에도 ‘한국의 아마존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인터넷 서점들이 등장했다.

불과 수년 뒤 아마존은 모든 카테고리의 인터넷 쇼핑으로 영역을 넓혔고 결국 ‘인터넷 서점 1위’가 아닌 ‘인터넷 쇼핑 1위’ 기업이 된다. 하지만 초기 아마존을 뒤쫓던 국내 인터넷 서점들은 현재도 인터넷 서점이다. ‘온라인 쇼핑’의 패권은 오픈 마켓, 소셜 커머스 등 다른 이름을 건 경쟁자들이 차지했다.

현재의 아마존은 ‘인터넷’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쇼핑·유통업계의 1위를 노린다. 월마트라는 오프라인 유통시장의 거대 공룡과 비교하면 아마존의 매출액은 한때 100분의 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4분의 1 수준까지 추격했다.

아마존의 매출액이 아닌 전체 거래 금액을 비교하면 격차는 더 줄어든다.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유통업계 1위라는 타이틀이 먼 얘기가 아니다. 미래 전망을 반영하는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아마존을 1위로 인정하고 있다. 시가총액 규모에서 월마트는 아마존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아마존이 되겠다’는 국내 기업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 1위’가 되겠다거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인터넷 시장에 뛰어들면서 ‘아마존처럼’을 외치기도 한다. 그들이 롤모델로 삼는 건 ‘구 버전’의 아마존이다. 아마존의 그림자를 뒤쫓는 동안 정작 국내 소비자들은 “왜 한국에는 아마존이 없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국내의 인터넷 쇼핑, 전자 상거래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오픈 마켓(G마켓·11번가·옥션)과 소셜 커머스(쿠팡·티몬·위메프)들이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이들은 큰 차이가 없다. ‘오픈 마켓’과 ‘소셜 커머스’라는 업종의 구분도 이용자들의 쇼핑 경험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올해 1~4월 방문자 수 1위는 11번가 차지였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무려 62%나 방문자가 늘었다. 11번가의 방문자가 급성장한 비결을 업계와 소비자 모두 알고 있다. ‘쿠폰’이다.

경쟁하는 업체들의 인터넷 사이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들어가 보면 같은 상품들이 진열돼 있다. ‘나를 위한 추천’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주려는 방식대로 상품을 보여주고 가격 비교가 쉽지 않도록 교묘하게 숨겨진 옵션들까지 하나같이 비슷하다.

방문자와 거래액을 늘리고 싶으면 쿠폰을 뿌린다. 같은 물건인데 어느 앱에서 사면 쿠폰으로 더 싸게 살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이 아닌 밑지고 파는 일이 반복된다.

경쟁사에는 없는 상품, 차별화된 쇼핑 경험, 각각의 소비자를 위한 맞춤 서비스 등 아마존이 하고 있는 ‘혁신’의 길과는 먼 경쟁이다. “이번엔 누가 쿠폰을 뿌릴까?” 지켜보는 체리피커들은 즐겁다.
혁신 상징된 아마존, 한국은 '쿠폰 경쟁'만
(사진)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인 제프 베조스. /한국경제신문


◆ 쿠폰 경쟁, ‘가격 불신’ 불러

인터넷 쇼핑업계의 쿠폰 경쟁에는 승자가 없고 패자만 있다. 그 대신 네이버가 의문의 1승을 거뒀다.

블룸리치에 따르면 미국의 소비자들은 인터넷에서 상품을 검색할 때 구글(34%)보다 아마존(44%)을 먼저 방문한다. 궁금한 것, 찾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구글에서 검색하는 게 당연한 미국인들은 “검색해 봐”라는 뜻으로 “구글 잇(Google it)”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쇼핑이 목적일 때는 ‘구글’보다 ‘아마존’이 더 믿을 수 있는 검색엔진이다.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조건(가격·배송 등을 포함한)의 상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PC나 스마트폰으로 아마존에 접속할 필요도 없다. 집 안 어딘가에 놓여 있는 스피커(에코)에다 필요한 걸 말하면 찾아서 배송까지 해준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어떨까. 오픈 마켓과 소셜 커머스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상품이 구비돼 있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쇼핑 경험을 주는 곳이 있다면 그 안에서 검색하면 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네이버로 간다.

원하는 상품이 있으면 네이버에서 ‘최저가’ 혹은 ‘무료 배송’ 조건으로 검색한다. 오픈 마켓과 소셜 커머스 업체들은 이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네이버 검색 상품에 쿠폰을 얹어 준다. 이렇게 고객을 늘리면 유통업체의 거래액이 늘어날지 몰라도 적자 폭이 커지고 네이버만 이익이다.

최근 한 증권사가 네이버의 쇼핑 거래액과 시장점유율을 추정한 자료를 발표하자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네이버가 인터넷 쇼핑의 실질적인 시장점유율 1위라는 보고서 내용은 그동안 ‘방문자’와 ‘거래액’을 키우기 위해 막대한 광고비를 네이버에 가져다줬던 유통업계의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응답자의 70% 이상이 네이버에서 상품 정보를 얻는다는 설문 조사를 근거로 네이버의 인터넷 쇼핑 시장 지배력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애널리스트의 분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 해답은 쿠폰 아닌 빅 데이터

10년 넘게 인터넷 쇼핑 업계에 몸담은 지인은 “아직 쿠폰보다 센 걸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을 다른 경쟁 수단을 찾으려고 해도 더 쉽고 더 즉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쿠폰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고백이다.

긍정적인 변화도 감지된다. 천편일률적인 상품과 서비스에 질린 소비자들에게 좀 더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아마존이 고객들의 사이트 내 이용 패턴을 분석해 서비스를 진화시켰고 소비자의 집에 설치한 에코를 통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걸 구경만 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다.

‘빅 데이터’에서 답을 찾으려는 유통업체들의 노력은 수면 아래에서 진행 중이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이용자들을 더 잘 이해하고 분석하는 한편 그들에게는 없는 다른 종류의 데이터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제휴에 나서고 있다.

성별·연령·지역·날씨 등 빤한 변수들만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옷과 여행 상품을 권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아마존, 이 말 속에는 누군가의 뒤를 쫓는 안일함이 숨어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더 만족스러운 쇼핑 경험’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면 굳이 비교 대상을 찾지 않아도 한국을 대표할 유통업체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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