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훈 기자 ] 현대자동차가 노동조합 내부 계파 갈등에 올해 임금협상이 늦어지고 있다. 최대 쟁점이던 임금피크제를 종전처럼 유지하기로 약속했지만 노조 집행부가 사측과 합의한 임협안을 조합원 대다수가 반대했다.

현대차는 하반기 어려운 대내외 경영환경을 감안해 임금피크제를 양보하는 등 조기 합의안 마련을 원했다. 하지만 노조 내부 7개의 하위 조직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임금을 더 달라"고 재교섭을 요구했다. 윤갑한 현대차 사장과 박유기 노조위원장 등 노사 교섭 대표들은 추석 연휴 전 타결을 목표로 2주간 재협상에 돌입한다.
현대자동차 울산 2공장 생산라인에서 작업자들이 부품 조립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자동차 울산 2공장 생산라인에서 작업자들이 부품 조립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 노조는 지난 27일 새벽 나온 투표 결과, 조합원 4만5777명(투표율 92.17%) 중 78.05%(3만5727명)가 반대표를 던져 2008년 이후 8년 만에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찬성률 약 21%는 2000년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잠정합의안 부결의 가장 큰 이유는 임금 인상폭이 예년 수준에 못 미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협상에서 임금 5만8000원 인상과 성과급 및 격려금 350% + 330만원,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주식 10주(주당 13만원 상당) 등에 합의했다.

이는 성과 및 격려금만 1인당 평균 1800만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최근 3년내 최저 수준이라는 이유로 노조 내부 불만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노조 측이 합의한 기본급 8만5000원 인상, 성과급 및 격려금 400% + 400만원, 재래상품권 20만원, 주식 20주 등과 비교하면 500만원 정도 적다는 분석이다.

노조는 애초 임금 15만2050원 인상,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일반·연구직 조합원의 승진 거부권,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해 왔다.

박유기 노조위원장은 29일 노조소식지에 "오늘부터 울산공장 사업부대표, 각 지역위원회 의장들과 모여서 각 공장과 위원회 조합원들의 의견을 듣고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공지했다.

현대차가 노조의 추가 임금 인상안을 얼마나 수용할지 여부가 2차 합의안 도출 시기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임단협 과정에서 반복되던 노조 내부 계파 싸움이 파업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못 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UAW(전미자동차노조)가 협상을 대행하기 때문에 노조 의견은 공장별로 수렴해 노노갈등은 없고 일본이나 유럽도 마찬가지"며 "노노갈등은 사측이 개입할 수 없고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라 조업 차질이 길어지면 부품 협력사의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말했다.

노사는 이번 주 협상 테이블을 다시 앉지만 80%에 가까운 압도적인 반대표가 나왔다는 게 현대차로선 부담이다. 잠정합의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역대 가장 높아 난항이 예상된다.

노사는 추석 연휴 전 타결이 목표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추석 이후로 길어질 수 있다. 작년에는 새 노조 집행부 선거 시즌과 맞물리면서 임단협이 연말까지 늦어졌다.

현대차는 지난 주까지 노조가 총 14차례 파업해 6만5500여대, 1조4700억원의 생산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노조는 2차 합의안을 마련하기 전까지 추가 파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도 노조 파업에 3만9000여대 조업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양보까지 한 데다 경영실적이 나빠진 상황에서 임금을 더 올려달라고 나서니 안타깝다"면서 "추석 전 타결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훈 한경닷컴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