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 대연정의 서열 2위 인사인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 겸 경제장관이 미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추진되는 자유무역협정 격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협상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 부총리는 28일(현지시간) 공개된 제 2공영 ZDF TV 인터뷰에서 "우리가 유럽인으로서 미국이 내건 요구에 굴복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은 실질적으로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대연정 소수당 파트너인 사회민주당의 당수이기도 한 가브리엘 부총리는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고 현황을 덧붙였다.

평소 거침없는 언변을 구사하는 편인 그의 이번 언급은 중도우파 기독민주당 당수로서 대연정을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TTIP 적극 추진' 입장과 대비된다.

2013년 7월 개시된 EU와 미국의 TTIP 협상은 역내 8억 인구의 자유무역협정의 출현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어서 크게 주목받았지만, 양측 간 이견 때문에 타결 시한이 계속 늦춰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퇴임 이전으로까지 또다시 후퇴한 상황이었다.

특히 영국을 포함한 EU 28개 회원국 중 최대 경제국인 독일 국내적으로 보면 이 협정이 독일에 이익이냐, 손해냐는 물음에 손해 70% 대 이익 17%로 응답이 갈릴 정도로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하는 편이다.

주로 양측이 충돌하는 분야는 당사국 정부 단위에선 파생금융상품 규제,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조항 채택 여부 등이었고, 유럽의 시장과 시민사회 영역에선 식품과 노동 시장, 소비자 주권, 환경 표준 등이 꼽혀왔다.

가브리엘 부총리는 또한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는 우려한 것처럼 경제적으로는 크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심리적 악영향을 미치는 사안일 뿐 아니라 거대한 정치적 문제라고 평가하고, 브렉시트를 잘못 다루면 유럽은 지금보다 매우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솔직하다는 평가와 거칠다는 지적을 동시에 받는 가브리엘 부총리의 화법과 행동은 독일 정치권에선 유명하다.

그는 최근 잘츠기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극우 세력이 자신에게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자 오른손 중지를 내보여 논란을 일으켰고, 이를 두고 "사려깊지 않다"라는 언론의 비판을 산 바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un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