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검찰 소환 조사를 앞뒀던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26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있는 한 산책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부회장(오른쪽)이 2011년 2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사무실에서 나오는 모습. 한경DB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검찰 소환 조사를 앞뒀던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26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있는 한 산책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부회장(오른쪽)이 2011년 2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사무실에서 나오는 모습. 한경DB
롯데그룹 안팎에선 이인원 부회장이 26일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두고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 등을 보호하고, 작년 경영권 분쟁에 이어 올해 검찰 수사까지 겪으며 사상 최대 위기에 놓인 그룹을 살리기 위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억울함과 책임감 작용한 듯

이 부회장이 남긴 유서로 자살 배경을 추정할 수 있다. 자필로 쓴 A4 네 장짜리 유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검찰과 경찰을 통해 일부 내용이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유서에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고 쓴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가 지시해 조성한 비자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이 지난 6월10일 롯데그룹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 뒤 두 달여간 수사를 벌였지만 그룹 차원의 비자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롯데 이인원 부회장 자살]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 미안하다" 유서 남기고 간 롯데 2인자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 수사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억울함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로비 의혹을 수사하다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의 법조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이를 덮기 위해 롯데 수사에 착수했다는 말이 법조계에서 흘러나와서다.

하지만 검찰의 생각은 다르다. 오랜 기간 롯데의 비리 혐의를 내사해오다 롯데그룹이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시작했다는 게 검찰 측 주장이다. 또 롯데건설이 2002년부터 2011년까지 3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를 잡고 이 과정에 이 부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정책본부가 연루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롯데그룹수사팀은 이날 브리핑에서 “롯데 계열사에서 조성한 비자금은 개별적으로 책임지는 게 아니다”며 “정책본부가 어떻게 관여하고 지시했는지를 이 부회장 진술을 통해 확인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유서에서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취지의 말도 남겨 신 회장을 끝까지 보호하려 했다. 검찰은 롯데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롯데 비리 의혹의 최종 책임자로 신 회장과 신 총괄회장을 꼽아왔기 때문이다.

조문한 롯데 임직원 울음 터뜨려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 미안하다”는 이 부회장의 유서 내용을 접한 롯데그룹은 하루 종일 침통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롯데그룹은 이날 언론사들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평생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롯데의 기틀을 마련한 이 부회장이 고인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신 회장도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이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말을 잇지 못하고 애통해했다”고 전했다.

롯데그룹 임직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5일 오전 9시께 출근한 고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수차례 보고를 받고 정책본부 임원들에게 업무지시를 했다. 오후 6시30분에 마지막 보고를 받고 오후 7시쯤 퇴근했다.

롯데그룹은 27일 서울아산병원에 빈소를 차려 30일 롯데그룹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26일엔 외부 방문객 출입을 통제하고 롯데 임직원들의 조문만 허용했다. 이날 오전까지 검찰 수사를 받고 나온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이 빈소를 찾았다. 황 사장은 조문객을 맞고 혼자 빈소 주변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진세 정책본부 커뮤니케이션실장(사장)은 “심경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빈소로 들어갔다. 신 총괄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이일민 전무와 일부 롯데 여직원들은 이 부회장 영정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강영연/노정동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