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중국의 황금기를 이끈 당 태종 23년의 정치 토론 기록인 ‘정관정요’에는 ‘창업은 쉬우나 수성은 어렵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원래 국가를 세우고 다스리는 법도에 관한 이야기지만, 기업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시장의 수많은 경쟁 기업을 물리치고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목표 고객의 니즈(needs)를 경쟁 제품보다 잘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목표 고객의 마음속에 효과적으로 포지셔닝(positioning)시켜야 한다. 게다가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시장에서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차별화(differentiation)한 포지션을 유지하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경쟁사가 모방하기 쉬운 '포지셔닝'…수성 키워드는 품질이다
기업은 4P’s, 즉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광고·판촉(promotion)의 네 가지 마케팅 믹스를 전략적으로 그리고 일관성 있게 활용해 고객의 마음속에 자신만의 포지션(입지)을 구축해 나갈 수 있다. 2014년 혜성처럼 나타나 단숨에 중국 시장을 장악하고 세계 3대 스마트폰 메이커로 올라선 샤오미는 차별화한 포지셔닝 전략의 재미있는 사례다.

샤오미가 설립된 2010년 당시 급성장하던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과 삼성으로 대표되는 고가격 고품질의 프리미엄 제품군과 브랜드가 미약하고 품질 수준도 크게 떨어지는 중국산 싸구려 제품군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때 샤오미는 부담없는 가격에 괜찮은 품질, 즉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가 높은 옵션이라는 포지셔닝으로 스스로를 경쟁자들과 차별화하면서 중저가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기 시작했다.

제품 측면에서는 젊은 취향에 맞는 트렌디한 디자인, 가격 측면에서는 거의 마진이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제공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과 직장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통 측면에서는 온라인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면서 원가 구조를 낮췄으며, 광고·판촉 측면에서는 TV 등 전통적 미디어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활용해 마케팅 비용을 절감했다. 특히 소비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면서 급속히 형성된 팬덤(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또는 문화)이 웨이보 등을 통해 적극적인 구전 마케팅 활동을 해준 것이 샤오미의 성장에 큰 힘이 됐다.

이처럼 샤오미는 자신의 브랜드를 기존 경쟁자들과 효과적으로 차별화해 성공을 거뒀다. 문제는 나의 잠재적 경쟁자들이 내가 쓴 포지셔닝 전략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내가 애써 구축한 차별화한 포지션이 고객의 관점에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때 ‘대륙의 실수’, ‘대륙의 실력’으로 불리며 각광받던 샤오미는 최근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2016년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의 점유율은 11.7%로 작년 동기 대비 34% 줄었다. 이에 반해 최근 떠오르는 오포(Oppo)는 13.9%, 비보(Vivo)는 11.9%를 차지하면서 중국 시장에서 샤오미를 제쳤다.

돤융핑 회장이 이끄는 오디오·비디오 전문업체인 부부가오에서 만든 형제 브랜드인 오포와 비보는 샤오미의 차별화 전략을 모방했다. 오포는 학생과 20~30대 여성을 목표로 음질, 카메라 성능 등이 우수한 50만~60만원대 제품을 내놓았고, 여성에게 인기가 높은 슈퍼주니어,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유명 연예인을 활용한 마케팅으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비보는 20~40대 남성을 목표로 고화질 디스플레이, 대용량 램 등을 장착한 80만원대 제품을 내놓았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특전사 대위 역할로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해 남성들의 ‘워너비(wannabe)’로 자리 잡은 한류 스타 송중기를 내세운 광고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처럼 오포와 비보는 시장을 세분화한 뒤 목표 고객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전략적으로 출시하면서 샤오미가 점유하고 있던 젊은 고객층을 협공하는 포지셔닝 전략을 취했다. 문제는 샤오미의 기존 목표 고객층은 브랜드 충성도가 낮으며, 가성비를 따져본 뒤 언제든지 더 좋은 브랜드로 갈아타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오포와 비보가 샤오미를 능가하는 품질 수준의 스마트폰을 내놓은 데 반해 샤오미는 스마트폰 제품의 성능 향상에 집중하기보다 노트북, 전동칫솔, 드론(무인항공기), 스마트 운동화, 헤드폰, 공기청정기, 정수기, 밥솥 등 제품 라인 다각화에 주력함으로써 가성비 측면에서 후발주자에 비해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샤오미 제품의 발열 문제, 약한 내구성, 기계적 결함 등에 대한 불만이 온·오프라인에서 구전 효과를 통해 확산되면서 재구매율이 떨어졌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아이폰 사용자의 70% 이상이 아이폰 재구매 의사를 밝힌 반면 샤오미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40% 정도만이 샤오미를 재구매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샤오미의 실적 부진으로 직결되고 있다.

기업은 시장 세분화(segmentation), 목표 고객 선정(targeting), 포지셔닝으로 이뤄지는 이 STP에 따라 경쟁 제품과의 차별화를 꾀함으로써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이는 전쟁에서 적군과 맞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는 노력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샤오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차별화한 포지셔닝 전략으로 고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들여 구축한 고지를 경쟁자들의 도전으로부터 수성하기 위해서는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제품의 품질이다.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객관적 품질(objective quality)’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온·오프라인상에서 전략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지각된 품질(perceived quality)’을 잘 관리해야만 차별화한 포지션을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 있다.

제품의 품질, 평판으로 뒷받침해야

마케팅 믹스에서 첫 번째 요소는 제품이고, 제품의 성능(performance)이나 기술적 우수성(technological excellence)을 반영하는 것이 품질이다. 통계적 품질관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데밍의 도움을 받은 일본 기업들이 1980년대부터 세계 자동차시장과 가전시장을 휩쓸면서 품질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마케팅 연구자들은 품질이 제품과 기업의 장기적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실증분석을 통해 입증해왔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품질에는 ‘객관적 품질(objective quality)’과 ‘지각된 품질(perceived quality)’이 있다. 객관적 품질은 예컨대 스마트폰의 경우 제품 크기, 무게, 중앙처리장치(CPU), 디스플레이, 내구성 등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물리적인 특성을 말한다. 지각된 품질은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 디자인, 사용 편리성(easy-to-use), 브랜드 이미지, 평판 등까지 포함해 소비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인식되는 요소들로 구성된다.

뉴욕 스턴경영대학원의 골더 교수와 플로리다 워링턴경영대학원의 미트라 교수는 ‘마케팅 사이언스(Marketing Science)’에 게재한 논문에서 객관적 품질과 지각된 품질 간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한 브랜드가 연구개발(R&D)을 통해 객관적인 품질을 높인다고 해도 이것이 품질에 대한 고객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제품 범주에 따라 3~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 좋은 평판을 가진 기업은 객관적 품질 향상이 지각된 품질 향상으로 전이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마케팅 전략의 필요성은 물론 평판 관리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신현상 < 한양대 경영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