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가격↑·김영란법·폭염…축산물 유통센터 매출 '뚝', 예년 30∼50% 예상
갈비·등심 뺀 한우+돼지 4만9천900원 선물세트 출시 "이마저 얼마나 팔릴지"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축산물 유통시장이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한우가격 상승,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폭염 등 '삼재'(三災)가 겹쳤기 때문이다.

지난 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매출이 급감할 것이란 한숨이 터져 나온다.

추석 연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에 있는 수원축협축산물유통센터.
명절 대목을 앞두고 쇠고기와 돼지고기 입·출고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뤄야 할 이곳에 트럭 3대만 덩그러니 서 있다.

지난 설은 물론이고 명절을 한 달여 앞두곤 해마다 전국 고기 도·소매점과 중간유통업체 트럭이 쉴 새 없이 드나들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수원축협 유통기획팀 문모 차장은 "입·출고 데크에 고기를 싣는 차들이 꽉 차 있어야 하는데,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마치 모두 휴가를 간 것 같다"면서 "고기를 사가지 않으니 오더(주문)도 없고 유통도 없다.

체감경기가 너무 심각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수원축협축산물유통센터는 예년에는 명절을 한 달 앞두고 한우 1천100∼1천300두를 부위별로 가공 작업해 150억원가량 매출을 올렸다.

한우가 고급육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명절 선물로 수십만원짜리 등심과 갈비 선물 세트가 불티나게 팔려나간 덕이 컸다.

한우 가격이 급등한 지난 설 때도 150억원에는 못 미쳤지만 그런대로 매출이 괜찮았다.

그러나 이번 추석을 앞두고는 전혀 딴판이다.

전혀 소비의 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00억원은 고사하고 절반이나 올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라고 상인들은 울상이다.

이곳 유통센터의 냉동창고에는 예전의 절반 수준의 가공육이 채워져 있다.

주문이 없기 때문이다.

축협 측은 한우 가격이 오른 데다 다음 달 말 시행 예정인 김영란법의 영향이 적지 않고, 이상고온이 지속하면서 고기를 찾는 소비자의 수요가 감소한 것을 '삼재'에 비유하며 축산유통시장 위축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축협 관계자는 "올 여름은 너무 더워 휴가나 캠핑을 가는 사람들이 고기를 사지 않아 타격이 컸다"면서 "여기에 김영란법을 의식해 고급 한우 선물세트 구매를 하지 않는 것도 원인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김영란법에는 공무원, 국회의원,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3만원이 넘는 음식 대접을 받거나 5만원이 넘는 선물을 받으면 과태료를 물리고 심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아무래도 명절 선물 시장이위축됐다는 얘기다.

강원도 평창한우마을도 이번 추석 한우선물세트 매출감소를 크게 우려했다.

평창한우마을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정한 5만원 이하로 한우 선물세트를 억지로 만들려면 한우 500g만 넣어야 한다"며 "그러나 갈비와 등심을 넣고 포장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최소 15만원 이상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그는 올해 추석에는 예년에 비해 한우선물센트 매출이 최소 30%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강원도가 조사한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도내 농·축·수산물 분야별 영향·피해' 자료를 보면 한우가 연간 176억∼197억원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분석됐다.

축산단지인 충남 홍성에서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올라가야 할 한우 거래량과 가격이 크게 줄었다.

홍성축협에 따르면 22일 현재 한우 가격은 전달과 비교해 1㎏당 500원가량 떨어졌다.

보통 한우 암소 한마리가 500㎏인 점을 고려하면 한마리당 25만원가량 하락한 셈이다.

송아지도 지난달보다 10% 이상 떨어져 암송아지는 36만원, 수송아지는 50만원 선에서 거래됐다.

홍성축협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전이지만 한우 시장에서는 이 법에 따른 소비위축 분위기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면서 "법 시행 이후인 내년 설에는 타격이 몸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의 대표 한우 생산단지인 함평축협은 올 추석 매출 '반 토막'을 걱정했다.

작년 추석 전 일주일 간 한우선물세트로만 4천여 개를 팔아 6억원의 판매액을 올렸다.

하지만 올 추석 예상 판매량은 선물세트 2천 개에 매출액도 절반으로 낮춰 잡았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데다 불경기가 지속되면 어느 정도 매출을 올려야 할 지금도 한우 세트 판매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함평축협 관계자는 "예년 명절 이맘 때가 되면 한우선물세트 예약이 최소 200∼300개 정도 있었는데, 올해는 1세트도 없다"면서 "작년에는 없던 5만원 미만 세트를 새롭게 출시했지만 이마저도 주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축산물 유통업계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수원축협은 김영란법 시행 전 마지막 명절인 올 추석 시장을 겨냥해 김영란법에 특화된 상품세트를 마련했다.

등심, 갈비 등 기존의 고급 부위로는 5만원 이하 선물세트를 구성할 수 없게 되자 불고기용 한우와 돼지고기를 섞어 4만9천900원짜리 '불고기 세트'를 구성했다.

명절 선물 1순위는 '한우 갈비'였으나 비싼 갈비는 선물세트에 넣을 수 없는 데다 비교적 가격이 싼 부위인 국거리용 양지도 5만원 이하로 구성할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한우와 돼지고기 불고기 부위를 조합한 것이다.

여기에 한우의 부산물인 뼈만으로 구성한 4만9천900원짜리 선물세트도 만들었다.

수원축협은 이 4만4천900원짜리 선물세트를 이번 주부터 시판할 예정이지만 얼마나 팔릴지 전전긍긍이다.

수원축협은 각 축협 매장, 온라인 쇼핑몰 '고기샵 (www.gogishop.co.kr)'에서 시중보다 15%가량 저렴하게 한우와 돼지고기를구입할 수 있다며 소비자들의 많은 이용을 당부했다.

경기도 축산정책과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소비자들의 심리적 위축이 작용해서 그런지 추석을 앞두고 한우 거래량이 지난 명절과 달리 조금 감소하는 것 같다"면서 "경기도는 10월 28일부터 사흘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첫 번째 한우축제를 여는 등 한우 소비 촉진을 위해 다방면에 걸쳐 노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김인유 배연호 한종구 여운창 기자 hedgeho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