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진그룹과 채권단이 7000억원의 부족 자금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한진그룹 고위 관계자는 19일 “채권단에 제시한 4000억원이 그룹이 부담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며 “부채 비율이 1000%를 넘는 대한항공이 채권단 요구대로 7000억원 전액을 한진해운에 지원하면 경영진과 이사회는 배임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기가 대한항공 등 그룹 전체 위기로 번지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한진해운, 결국 3000억 때문에 파산하나
채권단 관계자는 “채권단도 한진해운에 추가 자금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한진그룹이 7000억원을 지원하지 않으면 자율협약이 끝나는 다음달 4일 이후 채권 회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권 회수에 나서면 이미 6000억~7000억원 규모의 용선료와 항만이용료 등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한진해운은 부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파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순간 한진해운은 글로벌 해운동맹(해운사 간 선박과 항로를 공유하는 연합체)에서 퇴출당한다. 화주들은 계약을 해지하고, 한진해운 소속 선박 90여척이 곳곳에서 압류당할 가능성이 높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정부와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통해 회생한 벌크선사 팬오션과 한진해운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화주와의 개별 계약으로 부정기선을 띄우는 벌크선사는 화물을 다른 국내 선사에 넘기면 되지만, 정기노선에 컨테이너선을 띄우는 한진해운은 법정관리가 곧 파산 선고”라고 말했다. 그는 “한진해운이 망하면 국내 수출입 화주와 해운·항만업계는 직접적 타격을 입고 국가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해운동맹을 맺었던 외국 해운사들이 부산항 대신 일본 중국 등의 항구를 이용해 동서항로를 새로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며 “항구로 들어오는 배가 줄어들면 운임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항구를 이용하는 배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주협회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모두 청산되면 국내 해운·항만·무역업에서만 166억3000만달러(약 18조5923억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과 5446명의 실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운영하는 세계 70여개 노선의 영업망 가치는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해운사의 법정관리는 제조업과 같은 회생이 아니라 파산을 뜻한다는 점을 정부와 채권단이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