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에 부과금 아끼려고 자체금고에 현금보관
이삿짐트럭 298대·서류가방 95만4천588개·호텔방 195개 가득 채울 규모

유럽의 시중은행과 보험사들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자금의 일부를 현금으로 인출해 자체금고에 보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주목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마이너스 영역으로 추가 금리 인하를 함에 따라 ECB에 자금을 예치하면 연간 0.4%의 부과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ECB가 거둔 부과금은 ECB가 2014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이후 약 26억4천만 유로에 달한다.

ECB는 향후 경기가 악화하면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시중은행들이 내야 할 부과금은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은행과 보험사들은 부과금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을 열심히 궁리하고 있다.

대안의 하나는 중앙은행에 예치된 전자화폐를 현금으로 바꿔 자체금고에 보관하는 것이다.

FT 집계에 따르면 현재 유로존에서 유통되거나 은행이 보유한 돈은 2조750억 유로(약 2천500조원)에 달한다.

이는 길이 7.9m짜리 이삿짐 트럭 298대, 서류가방 95만4천588개, 호텔 방 195개, 2만2천984개의 폭 1.3m짜리 더블베드 아래를 채울 규모다.

세계적인 재보험사인 뮌헨 리는 중앙은행에 예치된 자금 가운데 수억 유로를 시범적으로 현금화해 보관하고 있다.

은행 측은 보관 비용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를 비롯한 몇몇 독일 은행들도 이를 검토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스위스의 한 연금펀드는 대규모의 현금 인출을 시도했다가 중앙은행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FT는 은행과 보험사들의 현금 보관 움직임이 현재로써는 암중모색 단계에 있지만 크게 확산한다면 경제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ECB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것은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은행들의 대출을 늘리려는 의도다.

은행들이 현금 보관이라는 수단을 통해 마이너스 금리의 영향에서 벗어난다면 굳이 대출을 늘려야 할 필요가 사라지는 셈이다.

중앙은행들에 다행스러운 것은 현금을 보관하고 수송하는 데 여러 가지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량의 현금을 일시에 인출하면 수송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또 유로화나 스위스 프랑을 고액권으로 인출하면 보관할 공간도 줄일 수 있다.

ECB는 오는 2018년에 500유로 지폐 발행을 중단할 계획이어서 은행들은 200유로 자리 지폐를 활용해야 한다.

은행들은 이에 대해 200유로 지폐를 금고에 보관하더라도 여유가 있다는 주장이다.

현금 보관에는 강도나 지진, 기타 예상치 못한 자연재난이라는 리스크가 있다.

따라서 합리적인 요율로 리스크를 부담해줄 보험사들을 찾는 것도 미묘한 문제가 된다.

현금 보관의 비용을 따져봤다는 한 은행은 보험료가 보유 현금의 0.5∼1%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ECB에 무는 부과금 0.4%보다는 높지만, 최저의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스위스중앙은행의 0.75%와는 차이가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시중은행들의 현금 보관에 선뜻 동의해줄지다.

몇몇 은행들이 현금을 보관에 나선다면 지폐 유통량도 급증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로존 19개국 중앙은행들뿐만 아니라 ECB도 인출 요구가 급증할 경우, 단기간에 지폐를 공급할 수 있는 조치들을 마련해두고 있다.

독일 은행 관계자는 그러나 은행들의 현금 보관이 확산될 가능성은 없다고 전망했다.

다만 은행들이 마이너스 금리의 충격에 대해 항의를 표명하는 것으로서는 좋은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금을 쌓아두는 것은 은행들에 큰 비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들이 사실상 금리를 더는 인하할 수 없다는 사정임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모두 이를 피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