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당개입·정책실패 책임 규명 전망
임종룡 등 구조조정 지휘부 책임론 부각 예상

여야가 12일 조선·해운 산업 부실화의 책임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23∼25일 열기로 하면서 구조조정을 주도해 온 정부와 산업은행의 관리책임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야야는 대우조선해양에 4조2천억원의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 결정을 했음에도 회사의 경영 여건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결정 과정에 부당한 왜곡과 개입이 없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 지원으로 부실해진 국책은행의 건전성을 살리기 위해 11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면서 정부가 아닌 한국은행의 돈을 빌리는 게 타당한지도 주요 쟁점이다.

검찰의 칼날이 대우조선해양 전·현직 경영진의 회계조작 의혹으로 확대된 가운데 최고 의사결정을 한 정부와 산업은행 수뇌부의 책임론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서별관회의 대우조선 지원결정 배경이 핵심 쟁점

그간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두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벌인 주요 사안 중 하나가 서별관회의 청문회 여부였던 데서 보이듯, 서별관회의는 이번 청문회의 핵심으로 꼽힌다.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본관 서쪽 별관에서 열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비공개 경제현안회의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이어져 온 경제부처 고위 당국자들의 비공식 모임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문제가 된 회의는 지난해 10월 22일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 방안을 논의한 자리다.

이 자리에서 정부·당국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은 총 4조2천억원의 지원안을 확정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6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발언했다.

'부실덩어리'로 전락한 대우조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기보다는 밀실 행정과 관치금융에 의해 정치적으로 지원이 결정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후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날 안건으로 다룬 '대우조선 정상화 지원방안' 문건을 공개하면서 의혹은 점점 더 구체화됐다.

금융위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건은 법정관리를 선택하면 수출입은행의 건전성이 심각하게 추락하게 돼 4조2천억원을 긴급 지원해 대우조선을 정상 기업처럼 만들고, 이와 관련한 행위는 면책해 준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한 주 뒤 산업은행이 발표한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이 이 문건의 결론을 그대로 옮겨온 것은 서별관회의가 사실상 최고 의사결정 기구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이 문건은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에 대한 소상한 시나리오별 분석을 정부 각 부처와 관계기관 등이 함께 작성했다는 점에서 "정식 의사결정에 앞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에 불과하다"는 정부의 해명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이 결정된 명확한 과정을 규명하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바꿀 방안 등이 청문회에서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또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지난 9일 지난해 대우조선해양과 KDB산업은행이 삼정회계법인에 의뢰해 작성한 대우조선해양 실사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이 대우조선해양의 3조1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공적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고 제기한 의혹도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심 대표의 주장에 대해 "추가 손실을 감리도 없이 분식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 '발권력 동원' 자본확충펀드 적법성도 도마에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조성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의 적법성 여부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자본확충펀드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출 부실로 산은·수은의 자본이 부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 11조원 규모로 조성됐다.

한은의 발권력을 바탕으로 '마이너스 통장'처럼 필요할 때마다 펀드에서 자금을 꺼내 대응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지난 5∼6월 두 달간 발권력 동원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자본확충펀드는 '비상계획'의 하나로 위상이 쪼그라든 상태다.

사용 최소화에 여야도 합의했다.

추경을 통한 국책은행 현금출자를 고려하지 않았던 정부가 입장을 바꿔 수은과 산은에 1조4천억원을 출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다.

그러나 자본확충펀드 사용 최소화 원칙을 강조하고,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또다시 발권력이 동원되는 일을 막자는 차원에서 야당 중심으로 적법성 공세가 재차 강해질 수 있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한은 발권력을 동원하게 되면 구조조정을 미루는 풍토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부실을 키우다가 나중에 한은 발권력으로 자본을 확충하면 되는데 수출입은행장이나 산업은행장이 구조조정을 하려 하겠느냐"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자본확충펀드뿐 아니라 한은이 특정 목적이나 분야를 지원한 것은 출자나 대출 등 형식을 떠나 항상 논란을 빚어왔다.

그동안 저금리로 중소기업을 지원한 금융중개지원대출과 가계부채 구조의 개선을 목표로 한 한국주택금융공사 출자,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한 산업은행 대출 등도 발권력으로 특정 분야를 지원한다는 특혜 시비를 비켜가지 못했다.

이번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는 대우조선해양 등 특정 기업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 금융당국 책임론 불거질 듯

청문회의 화살은 결국 당시 의사결정에 관여한 청와대, 기획재정부, 금융위, 산업은행의 최고 수뇌부의 책임론으로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은 구속수사 중인 남상태 전 사장 등 전직 경영진뿐 아니라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김열중 부사장 등 현직 임원까지 수사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홍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6월 인터뷰에서 '서별관회의에 들러리만 섰다'고 했지만,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은의 관리실패와 관련한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작년 10월 서별관회의 참석자인 당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정부가 구조조정에 부당 개입했는지에도 초첨을 맞출 전망이다.

특히 임 위원장은 현재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사실상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임 위원장이 2013년 6월부터 작년 초까지 NH농협금융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STX조선해양에 대한 농협은행의 여신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점을 들어 구조조정을 주도할 자격이 있는지를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임 위원장은 최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대우조선이 파산했을 때의 사회·경제적 충격, 조선산업에 미치는 영향, 자금 회수에 대한 채권단의 판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구 노력을 중심으로 하는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이지헌 박초롱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