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자 정치권에선 연일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전력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누진제 개편을 외치는 야당이 정작 발전소 건설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 의원 70명은 11일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중단을 골자로 하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신고리 5·6호기는 지난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로부터 건설 허가를 받아 조만간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개정안은 원전에 대한 안전성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신고리 5·6호기의 착공을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기존 원전 부지에 원전을 추가 건설하려면 ‘다수 호기 안전성 평가보고서’와 ‘다수 호기 전력계통 신뢰도 평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원전 부지 조사 보고서에 바다를 포함한 부지 반경 40㎞ 이내 활성단층 유무에 관한 내용도 담도록 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 개정안 전에 허가를 받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는 3개월 이내에 중단해야 한다. 만일 개정안 시행 후 중단된 신고리 원전 공사를 개시하려면 원안위 재적 위원 5분의 4 이상의 찬성 의결을 거치도록 못박았다. 원안위원 9명 중 야당 추천 몫이 2명이다. 야당 추천 위원의 찬성 없이는 공사 재개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재호 더민주 의원은 “전력소비 증가율이 수년째 전망치를 밑돌고 있는 만큼 무분별한 원전 건설에 제동을 걸 때가 됐다”며 “다수 호기 원전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될 때까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예 종류를 막론하고 발전소 자체를 지을 수 없도록 하는 법안도 내놓았다. 우원식, 어기구 더민주 의원 등 야당 의원 52명은 지난달 25일 전원개발촉진법 폐지안을 발의했다. 전원개발촉진법은 발전소 건설 사업자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실시계획 승인을 받으면 도시관리계획결정, 도로점용허가 등 지방자치단체가 관장하는 수십 개의 각종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특별법이다. 발전소를 짓는 데 드는 행정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해 신속히 공사에 착수할 수 있게 해준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전원개발촉진법이 과거 대규모 발전소 확충을 위해 제정됐지만 지금은 전력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키므로 필요가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정부 관계자는 “전원개발촉진법을 폐지하자는 것은 더 이상 한국에서 발전소를 새로 짓지 말라는 소리”라며 “누진제가 완화되면 전력 소비량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책임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오형주/은정진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