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걸리는 방폐장 부지 선정, 출발부터 난항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을 이르면 8일께 입법예고하기로 했다. 이 법의 국회 통과 여부가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을 위한 첫 관문인 셈인데, 야당은 “장기적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없애겠다고 정부가 선언하지 않으면 법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 “늦어도 내년 2월 처리”

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8일께 고준위 방폐장 관리절차법을 입법예고하고, 10월 중순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4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과 국무회의 의결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출까지 두 달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법안에는 방폐장 후보지 이름이나 보상 방법 및 규모 등 민감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방폐장 건설 정책이 크게 흔들리지 않게 법으로 기본적 내용을 명시해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안에 법안을 통과시키길 원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늦어도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는 처리해야 한다”며 “내년 말에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더 미뤄지면 내년 안에 처리는 힘들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2028년까지 선정하고 2053년께 가동을 시작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 이 기한은 계속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내놓은 시한은 내년부터 부지 확보 작업을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경우다. 법안 통과가 안 된 상황에서 정부가 부지 확보에 나서면 반대 여론에 부딪힐 수 있다.

◆野 “탈핵 선언해야 협조”

정부는 “법안에 논란이 될 내용은 거의 없다”고 설명하지만 국회 통과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원자력 정책 현안과 연계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어서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탈핵·에너지전환 의원 모임’의 반발이 심하다. 27명으로 구성된 이 모임에는 우 의원과 5명의 산업위 야당 의원이 속해 있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원전을 없애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며 정부가 ‘탈핵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탈핵 선언이 없으면 법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이를 대체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탈핵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야당은 방폐장 건설 전까지 기존 원전에 임시저장소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정부 기본계획에 포함된 것도 문제 삼고 있다. 정부는 월성원전에 있는 임시저장소를 넓히고, 한빛원전 등 다른 원전에도 임시저장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탈핵 모임에는 원전이 많은 부산이 지역구인 김영춘 김해영 전재수 최인호(이상 더민주), 울산이 지역구인 윤종오(무소속) 의원 등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원전 건설 승인부터 핵 폐기물 처리까지 원전 관련 사안에 지역 주민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지역 주민들에게 되도록 많은 보상금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