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자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업들이 현금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것으로 집계됐다.

3일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의 2분기 사내 유보금은 18%가 늘어난 1조2천억 달러(약 1천335조원)에 달했다.

증가 폭은 6년 만에 최대다.

지난 25년간 중국 기업들이 리스크를 무릅쓰고 과감히 투자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것으로, 정책 당국자는 물론 투자자들에게도 당혹스러운 현상이다.

민간 부문의 고정자산 투자는 지난해 10%의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2.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상반기 기준 증가폭은 사상 최저다.

HSBC은행 아태 주식전략부장인 헤럴드 반 데어 린데는 "기업들의 투자 기피는 현실적으로 점점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도이체자산운용의 아태지역 최고투자책임자인 숀 테일러도 중국 기업들이 투자하려고 해도 마땅한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모든 중국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상반기에 역내 채권시장에서 17건의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발생한 데서 알 수 있듯 일부 기업들은 현금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상반기 디폴트 건수는 지난해 전체 건수의 2배다.

업종별로도 편차가 뚜렷하다.

제조업과 에너지, 원자재 등 이른바 구경제 기업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지만, 소비재와 정보기술(IT) 등 신경제 기업들은 현금이 풍족하다.

기업들이 현금 보유를 늘리는 데는 향후 중국 경제가 더욱 둔화하면 부채의 차환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경영자들의 판단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중국 기업들의 회사채 규모는 사상 최고 수준인 3조 위안(4천520억 달러)에 이른다.

홍콩 앰플 캐피털의 한 관계자는 우량 기업들이 몸을 사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주식이나 채권시장 상황이 모두 좋지 않아 새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는 것이 중국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일본 기업들이 정부의 경기부양책을 불신해 지난해 사내 보유금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을 늘린 속도는 일본의 13%, 미국의 55, 유럽의 1%를 크게 앞선다.

CLSA증권의 중화권 투자전략부장인 프랜시스 청은 정부가 투자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민간 부문이 호응해주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