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게임 신화' 넥슨 김정주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넥슨의 창업주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회장(사진)이 진경준 검사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29일 불구속 기소됐다. 김 회장은 검찰의 기소 발표 직후 상장사인 넥슨재팬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1994년 6000만원으로 넥슨을 설립해 20여년 만에 연 매출 2조원의 국내 최대 게임업체로 키운 그의 성공신화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됐다.

검찰 특임검사팀은 이날 진 검사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제3자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진 검사장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김 회장을 불구속 기소한다고 발표했다. 검찰 발표 직후 김 회장은 사과문을 내고 상장사인 넥슨재팬 등기이사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무너진 게임 신화' 넥슨 김정주
김 회장은 사과문을 통해 “사적 관계 속에서 공적인 최소한의 룰을 망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법의 판단과 별개로 평생 이번의 잘못을 지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넥슨이 처음 사업을 시작하며 꿈꾼 미래지향적 기업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기원하겠다”고 했다.

그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대부분 시인했다. 대학 동창인 진 검사장에게 자신의 돈으로 넥슨 주식을 사 줬으며, 자동차와 여행경비 등 특혜를 제공했다. 김 회장은 권력을 멀리한 채 사업에만 매진해 오늘의 넥슨을 일군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검사 친구에게 특혜를 주고, 이를 회사의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으며, 사건이 불거지자 침묵으로 일관한 ‘은둔형 기업인’의 부정적 측면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너진 게임 신화' 넥슨 김정주
김정주 NXC 회장(사진)은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난 3월 말 이후 검찰에 소환된 이달 초까지 3개월간 입을 다물어왔다. 사건의 진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김 회장이 침묵함으로써 그와 회사를 둘러싼 의혹만 증폭됐고, 벤처업계와 게임산업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잘못된 만남

진 검사장과 김 회장의 수상한 주식거래가 드러나기 전까지 김 회장은 게임업계에서 ‘신화’로 통했다. 1994년 말 자본금 6000만원으로 송재경(현 엑스엘게임즈 대표), 김상범(전 넥슨 이사) 씨 등과 함께 넥슨을 창업할 당시만 해도 이 회사는 작은 인터넷 기업에 불과했다. 대기업의 홈페이지를 외주 제작하며 근근이 회사를 꾸려가다가 1996년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등 출시하는 게임마다 대박을 터뜨리며 급성장했다. 창업한 지 10년 만인 2004년 넥슨 매출은 2000억원을 돌파했고 한국의 대표적 게임회사로 성장했다.

진 검사장과의 잘못된 만남도 이때 이뤄졌다. 김 회장과 진 검사장의 만남은 2000년대 초반 변호사인 김 회장 부친의 소개로 이뤄졌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대 동창이지만 두 사람이 그전부터 잘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고 김 회장은 회사가 급성장하던 2005년 진 검사장에게 아직 상장하지 않은 넥슨 주식을 사실상 자신이 사서 주는 방식으로 넘겨줬다. 올 3월25일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진 검사장이 넥슨 주식을 팔아 126억원의 대박을 낸 사실이 드러난 게 사건의 발단이 됐다. 김 회장은 검찰에서 “친구이기도 했지만 보험용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했다”고 털어놨고, 27일 발표한 사과문에서는 “사적 관계 속에서 최소한의 공적 룰을 망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김정주 NXC 회장이 29일 넥슨재팬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기로 하면서 넥슨 경영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넥슨코리아 본사.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정주 NXC 회장이 29일 넥슨재팬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기로 하면서 넥슨 경영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넥슨코리아 본사.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은둔 경영과 지분에 대한 집착

넥슨은 2011년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했고 지난해 회사 매출은 2조원을 기록했다. 김 회장의 보유주식 가치는 4조6000억원으로, 1960년 이후 출생한 신진 창업부호 1위에 올랐다. 그렇지만 회사의 급성장과 상장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행보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우선 과도할 정도로 지분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넥슨 직원들조차 “김 회장은 지분에 집착이 강해 자신이 잘 알고 믿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지분을 넘겨주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넥슨은 김 회장과 부인 유정현 NXC 감사가 97%를 소유한 지주회사 NXC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계열화된 구조다. 그는 ‘회사 경비원이나 야근 직원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은둔 경영을 해왔다.

회사가 급성장할 때 그의 이런 특징은 모두 장점으로 인식됐다. 지분에 대한 집착은 회사 경영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조치로, 은둔 경영은 권력에 무관심한 ‘소탈함’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그는 회사 창업 멤버들에게조차 나눠주지 않던 지분을 검사인 친구에게 자신의 돈으로 사줬다. 지나친 은둔 경영으로 그의 과거 행적을 거의 모르는 회사 측은 이번 사건이 터진 뒤에 번번이 틀린 해명을 내놔 의혹만 키우는 꼴이 됐다. 한때 칭송받던 지분 집착과 은둔 경영이 회사에 큰 해를 끼친 것이다.

이미지 추락과 경영 공백

넥슨 측은 이날 김 회장의 넥슨재팬 등기이사 사임에도 불구하고 오웬 마호니 넥슨재팬 대표와 박지원 넥슨코리아 대표로 이어지는 현 체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또 넥슨그룹 지주회사인 NXC의 대표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곽대현 넥슨코리아 홍보실장은 “김 회장은 그전에도 일상적인 회사 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며 “마호니 대표와 박 대표가 합심해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고 그룹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당한 브랜드 타격을 입었다. 참신한 벤처 게임업체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비리 회사’란 오명을 쓰게 됐다.

설상가상 격으로 넥슨은 4년여의 개발 기간을 들여 내놓은 신작 게임 ‘서든어택 2’가 선정성 논란을 빚자 오는 9월29일부터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이날 공시했다.

임원기/이호기/유하늘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