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파문에 업계 경악…"젊은 산업에서 구시대적 민관유착"

국내 1위 게임사 넥슨의 신화를 일군 김정주 창업주(넥슨 지주사 NXC 대표)가 국내 게임업계 처음으로 고위공직자의 뇌물 추문에 휘말려 재판정에 서야 할 처지가 됐다.

젊은 벤처 문화가 대세인 국내 게임업계에서 기존 대기업을 답습하는 이런 민관유착 의혹은 전례가 없어 업체들의 충격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 게임업체 관계자는 29일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게임 관련법을 위반하거나 선정성·유해성 논란으로 회사 대표가 기소되는 경우는 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 "자수성가형 경영자가 성실하게 경영한다는 업계 이미지가 무너졌다"고 강조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게임 자체가 젊은 산업이고 급성장과 빠른 변화가 특징이라 다들 시장 생존에 몰두하는 분위기인데, 검사장에게 자사주를 뇌물로 주는 구시대적 의혹이 불거져 황당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학부와 KAIST 대학원을 거친 이공계 엘리트인 김 대표는 1994년 넥슨을 창업해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등 히트작을 내놓으며 수년 만에 스타급 게임사로 키웠다.

특히 승부사적 사업 감각을 앞세워 2008년 '던전앤파이터' 개발사인 네오플을 사들이는 등 수차례 성공적인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켜 1위 업체의 지위를 다졌다.

김 대표가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진경준 검사장에게 무슨 구체적 편의를 바라고 은밀히 뇌물을 건넸는지에 대해선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김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120억원대 '주식 대박'을 진 검사장에게 안겨준 넥슨 자사주를 왜 제공했는지를 추궁받자 '검사라서 보험성으로 줬다'란 취지로 진술했지만, '보험'의 구체적 용도가 뭔지에 대해선 입을 다문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서는 2011년 '메이플스토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2010년 게임사 '엔도어즈' 인수와 관련한 분쟁 등 넥슨의 주요 법적 문제에서 김 회장이 진 검사장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적잖다.

게임업계에서는 김 대표가 컴퓨터공학 연구자 출신이란 배경과 달리 게임 개발보다는 대형 M&A와 사업 제휴로 회사를 키웠기 때문에 자칫 당국자와 부당 거래에 유혹을 느꼈을 공산이 있다는 추측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넥슨은 게임 개발사라기보다는 투자사란 정체성이 강했다.

김 대표가 끊임없이 외부로 사업 기회를 찾아다녔던 만큼 게임 사업과 무관한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됐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뇌물공여 혐의 외에도 배임·횡령·탈세 등 기업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고강도의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

창업 때부터 경영권 관리를 중시한 김 대표가 지금도 넥슨에서 압도적 지분을 가진 데다 '은둔자'가 별칭일 정도로 경영 스타일이 불투명하고 폐쇄적이라 '숨겨진 전횡'에 대한 추측이 나온다.

사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몰래 편법·탈법을 일삼던 일부 대기업 총수와 닮은꼴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김 대표와 부인 유정현 씨는 현재 넥슨 지주사인 NXC의 지분 90% 이상을 보유해 IT(정보통신) 업계에서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크다.

NXC는 김 대표 부부의 지분을 2011년 이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2011년 당시에도 이들의 지분율은 김 대표 48.5%·유씨 21.2%로 이미 7할에 육박했다.

현재 검찰은 김 대표 부부가 100% 지분을 가진 IT 업체인 '와이즈키즈'가 NXC 자회사였던 부동산 임대 업체 '엔엑스프로퍼티스'를 헐값에 인수해 사실상 NXC에서 가로챘다는 의혹을 살펴보고 있다.

해당 의혹이 사실이면 김 대표는 배임 혐의를 받게 된다.

또 NXC가 보유한 넥슨재팬 주식을 대거 벨기에에 있는 김 대표의 투자사 'NXMH B.V.B.A'와 조세회피처 펀드로 옮겨 역외 탈세가 의심된다는 논란도 검찰의 주요 조사 대상으로 알려졌다.

넥슨은 "김 대표가 글로벌 신사업 투자금을 마련하고자 넥슨재팬 주식을 NXC에서 국외 회사로 옮긴 것이 오해를 받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진 검사장 사태로 넥슨에 쉽게 잊히지 않을 그림자를 드리웠다.

2000년대 초반부터 넥슨과 관련해 김 대표가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사건 이전에는 넥슨 브랜드에서 김 대표를 연상하는 이들도 드물었다.

김 대표는 검찰 기소가 발표된 29일 넥슨의 본사 역할을 하는 넥슨재팬의 등기이사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넥슨의 경영에 관여하는 핵심 통로를 폐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런 조처에도 김 대표와 진 검사장의 악연이 넥슨에 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개연성은 크지 않다고 업계는 본다.

김 대표는 어쨌든 넥슨의 뿌리인 NXC의 지배 지분을 가진 사주이기 때문이다.

한 중견 게임업체의 관계자는 "김 대표와 넥슨의 관계는 결국 물의를 일으킨 대기업 총수와 해당 대기업의 관계처럼 굳어질 위험이 있다"고 평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김예나 기자 tae@yna.co.kr, 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