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에 대한 비관론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 재고 급증이라는 3대 악재가 맞물리면서 다시 배럴당 40달러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헤지펀드도 유가 약세에 베팅을 늘리고 있다.
되살아나는 '저유가 공포'…40弗 깨지나
○4개월 랠리 접고 하락세로 돌아서

2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원유(WTI) 9월 선물가격은 전장보다 2.4% 하락한 배럴당 43.13달러에 마감하며 최근 3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북해산 브렌트유 9월 선물 가격도 런던 ICE거래소에서 2.1% 내린 배럴당 44.72달러에 마감했다.

올 들어 유가는 1월 말 바닥을 찍은 뒤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랠리를 보였다. 이 기간 유가는 배럴당 33달러에서 51달러로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50달러를 돌파한 뒤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유가 하락의 원인은 공급 과잉이다. 그동안 상반기 내전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은 나이지리아가 원유 생산시설을 공격한 반군을 제압하며 생산량을 회복했고, 이라크도 수출량을 대폭 늘리고 있다. 지난주 미국의 원유시추설비(리그) 가동 건수는 1주일 전보다 14개 늘어난 371개로, 4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지난 1월 초 516개이던 리그 가동 건수는 6월 초 325개까지 줄어든 뒤 반등세로 돌아섰고, 7월 이후에는 매주 증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정유사의 정제유 공급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도 유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정유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공급 과잉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로 인해 수개월 내 원유 수요가 다시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세계 정제유 수요를 기존의 하루 80만배럴에서 62만5000배럴로 하향 조정했다.

○40달러까지 후퇴 전망

전문가들은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는 여름 성수기에도 원유 재고가 줄지 않는 것은 그만큼 수요 부진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주 대표적 원유저장소인 미국 오클라호마 쿠싱지역 원유 재고가 전주보다 110만배럴 증가했다. 미국 전체의 원유 비축량이 지난주 5억1950만배럴로 1990년 이후 최고 수준을 보인 것 역시 유가약세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인들이 휴가에서 돌아오는 9월부터 휘발유 소비가 줄어드는 시기”라며 하반기 유가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재고 급증에 계절적 수요가 줄면서 유가가 다시 40달러까지 밀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헤지펀드도 유가 약세에 대한 베팅을 늘리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WTI 원유 선물에 대한 매도 포지션 계약은 5월 말 5만3377건에서 이달 19일 14만1237건으로 두 배가량 급증했다. 같은 기간 북해산 브렌트유에 대한 매도 포지션도 3만3111건에서 7만8341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미즈호증권도 엄청난 휘발유 재고를 이유로 유가 전망을 배럴당 45달러에서 40달러로 내려 잡았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에너지업계의 생존위기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주 세계 최대 원유서비스업체 슐렘버거는 2분기 21억6000만달러, 주당 1.56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도 11억2000만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손실폭이다. 회사 측은 “세계 원유시장의 전례 없는 침체가 지속되고, 업계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슐렘버그는 이날 8000명을 추가로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