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 24 - 서울대입구역 샤로수길

골목 시장 따라 이국적 음식점 즐비…1년 만에 임대 시세 2배 '껑충'

[상권 24] 세련된 맛에 저렴한 가격, 서울대생·자취족의 '새 아지트'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 김태림·주현주 인턴기자] “여기는 원래 동네 시장이어서 음식점이 하나도 없었죠.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됐어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한 샤로수길에서만 3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는 한 슈퍼마켓 주인은 아직도 이 골목의 변신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현재 이곳엔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이국적인 레스토랑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생겨나는 추세다.

오래된 정육점과 이웃하고 있는 세련되고 이국적인 레스토랑. 이런 ‘낯선 조합’이 당연한 듯 뒤섞여 있는 샤로수길은 이제 막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새내기 상권’이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음식점 하나 없던 동네 시장이 1~2년 사이에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즐비한 ‘뜨는 상권’으로 변모한 비결은 무엇일까.

◆싼 임대료 찾아 4년 전 하나둘 둥지

샤로수길의 이름은 서울대정문을 나타내는 조형물 모양을 딴 ‘샤’와 세련된 가게들이 모인 ‘가로수길’을 결합해 만들어졌다. 4년 전인 2012년 샤로수길에 자리 잡은 초창기 멤버로 이탈리안 비스트로 모힝을 운영 중인 박태균 사장은 “서울대입구역 대로변은 진입 장벽이 워낙 높아 골목길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박 사장뿐만 아니라 초창기 이곳에 진입한 대부분의 가게들이 마찬가지였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을 중심으로 한 사거리 일대는 역세권인데다 롯데시네마(4번 출입구)라는 대형 극장을 끼고 있어 유동인구가 넘치는 곳이다.

지하철공사에 따르면 서울대입구역의 평일 승하차 인원은 각각 6만 명에 달한다. 이를 따라 대로변을 중심으로 프랜차이즈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개인 창업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점점 더 좁아졌다.
[상권 24] 세련된 맛에 저렴한 가격, 서울대생·자취족의 '새 아지트'
이 같은 상황에서 개인 창업자들이 눈을 돌릴 수 있는 대안은 다름 아닌 동네 시장 골목이었다. 박 사장은 “4년 전 당시 서울대입구역 임대 시세에 비해 샤로수길은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며 “지금도 2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26㎡(8평)를 기준으로 했을 때 서울대입구역은 권리금이 2억3000만~2억5000만원 수준이며 월세는 500만원 정도다. 이에 비해 샤로수길은 권리금 5000만원 안팎에 월세 200만원 수준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창업자들이 샤로수길에 몰려드는 이유다.

배후 수요가 풍부하고 특징이 뚜렷하다는 것 또한 샤로수길에 상권이 형성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다. 대학가 근처에 자리한 상권답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타깃은 인근 서울대 학생들이다.

샤로수길 진입로 쪽에는 서울대 정문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정류장이 자리하고 있다. 입지 조건을 따져 봐도 서울대 학생들이 드나들기 유리한 길목인 셈이다.

신림동 고시촌이 쇠퇴하면서 전통적으로 서울대 학생들의 아지트로 일컬어지던 ‘녹두거리’를 대신할 장소를 찾던 시기와도 운 좋게 맞아떨어졌다. 서울대생들의 새로운 아지트로 ‘샤로수길’이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다.

◆‘가성비 갑(甲)’으로 입소문

서울대입구역 인근에 거주하는 ‘자취족’들도 중요한 배후 수요다. 이 일대는 20~30대 학생들과 젊은 미혼 직장인들, 신혼부부들이 주로 거주하는 대표적인 ‘원룸촌’이다. 강남 일대를 지하철로 10~20분이면 갈 수 있는 데다 임차료도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샤로수길 주변 또한 33㎡(10평) 안팎(보증금 1000만원, 월세 40만원)의 원룸들이 빼곡한 주택가다. 3년 전인 2013년 이곳에 문을 연 맥주 전문점 낭만싸롱의 최기호 사장은 “처음부터 배후 수요를 고려해 타깃을 학생에 맞췄다”며 “지금은 직장인과 학생의 비율이 50 대 50 정도”라고 설명했다.

(사진) 서울대생들의 아지트였더 '녹두거리'가 쇠락하면서 '샤로수길'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김기남 기자
(사진) 서울대생들의 아지트였더 '녹두거리'가 쇠락하면서 '샤로수길'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김기남 기자
이 상권이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가성비 갑(甲)’이라는 키워드가 결정적이었다. 가격 대비 품질 만족도를 일컫는 ‘가성비’라는 표현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가성비 갑’ 상권의 대표 주자로 샤로수길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샤로수길의 주요 고객층인 20~30대 젊은층은 기성세대와 달리 상대적으로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등을 통해 외국의 문화를 접해 본 경험이 많다. 강남·청담 상권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외식도 즐긴다. 하지만 수입이 없는 학생이거나 직장 초년생인 이들의 주머니는 가벼울 수밖에 없다.

이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샤로수길에 진출한 가게들이 내세운 것은 바로 ‘세련된 입맛’과 ‘부담 없는 가격’이었다. 강남이나 청담까지 나가야 맛볼 수 있던 이국적인 음식을 집에서 10분 내의 가까운 거리에서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콕 음식 전문점인 방콕야시장, 프랑스 가정식 전문점 아멜리에, 미국식 수제 버거 전문점 더 멜팅팟 등이 이 상권의 대표 주자들이다. 이들 음식의 가격대는 강남·청담 상권에 비해 대체로 20~30% 저렴하다.

◆낙성대 교차로까지 ‘상권 확장’ 중

서울대입구역 2번 출입구 대로변에 자리한 엔제리너스 카페 옆 골목에서부터 시작하는 샤로수길은 낙성대 교차로 방향으로 600m 정도 이어져 있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지만 이 짧은 골목 안에서도 각각 다른 분위기가 난다.

먼저 서울대 정문 방향인 샤로수길 입구는 이 상권이 출발점이다. 2012년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샤로수길 원년 멤버들 대부분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청포도 맥주’ ‘모히또 맥주’와 같은 톡톡 튀는 메뉴로 젊은 입맛을 사로잡은 맥주 전문점 낭만싸롱과 가벼운 주머니에 막걸리를 즐기기에 좋은 막걸리 카페 ‘잡’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이 객단가(1인당 평균 매입액)가 2만원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마음 편하게 가벼운 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가게들로, 저녁 5~6시쯤 문을 열어 새벽까지 운영하는 곳이 많다. 임대 시세는 26㎡를 기준으로 권리금 5000만~6000만원, 보증금 1000만~3000만원, 월세 120만~24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샤로수길의 중간 지점은 봉천7동 골목 시장이 자리하고 있어 재래시장의 분위기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다. 오래된 옷가게와 채소가게·세탁소·슈퍼마켓·정육점 등이 여전히 활발하게 영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샤로수길이 확산되면서 일식 전문점 키요이, 태국식 치킨 전문점 반까이양, 푸짐한 김치찌개를 맛볼 수 있는 삼백그람, 스테이크 전문점 샤로스톤 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가장 활발하게 들어서는 곳이기도 하다. 임대 시세는 26㎡를 기준으로 권리금 4500만~5000만원, 보증금 3000만~4000만원, 월세 200만원 수준이다.
[상권 24] 세련된 맛에 저렴한 가격, 서울대생·자취족의 '새 아지트'
시장을 지나 낙성대 방향으로 조금 더 가다 보면 서울대 후문 방향으로 이어진다. 샤로수길 입구나 중간 지점과 비교해 새롭게 문을 연 가게들이 아직은 드문드문 있다. 하지만 상권 확장과 함께 잠재력이 높은 곳으로 주목 받는다.

스테이크·립 전문점 연미랑 사장은 “학생들이 주 고객층인 입구나 중앙 쪽에 비해 서울대 후문 쪽은 직장인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서울대 교직원이나 직장인들의 비율이 80%에 달한다”고 말했다. 낙성대입구 근처 오피스 직장인들을 새로운 수요층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 샤로수길 입구보다 점심 장사가 잘된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이 구역에 새롭게 들어서는 가게들은 면적이 다른 곳보다 넓고 객단가도 2만~3만원 선으로 샤로수길의 다른 구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임대 시세는 83㎡(25평)를 기준으로 권리금 8000만~1억원, 보증금 2000만~2500만원, 월세는 230만원 수준이다.

◆“매출 20% 올랐는데, 월세는 2배로”

샤로수길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상권 내부에도 활기가 돌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동인구의 변화다. 브라질리언 왁싱 전문점인 마에스트로터치의 사장은 “1년 전부터 부쩍 외부 인구의 유입이 늘었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고객들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난 만큼 가게 매출도 크게 뛰었다. 4년 전 한 달 매출이 1000만원이었다는 한 맥주 전문점은 최근 매출이 2000만~3000만원까지 늘었다. 인근에서 스테이크 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가게도 1년 전에 비해 매출이 약 20% 정도 뛰었다.

문제는 임대 시세가 덩달아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태국식 치킨 전문점 반까이양 사장은 “월세가 1년 전부터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며 “월세 50만~60만원 하던 곳이 지금은 100만~150만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권리금만 해도 4년 전 1000만원 하던 곳이 지금은 5000만원까지 5배 정도 올랐고 월세는 40만원에서 240만원까지 6배가 뛰었다. 1년 전 권리금 3000만원 하던 곳이 현재 5000만원에 거래되고 있고 월세 100만원은 200만원으로 올랐다.

카레 전문점 모다모다의 천오현 사장은 “매출 증가 속도가 임대료가 올라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소규모여서 테이블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부담 없는 가격’을 무기로 성장한 상권이다 보니 객단가를 올리는 데도 조심스럽다는 반응이다.
[상권 24] 세련된 맛에 저렴한 가격, 서울대생·자취족의 '새 아지트'
이미 ‘뜨는 상권’이 돼버린 샤로수길에서 창업은 늦은 것일까. 의외로 상인들의 대답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샤로수길엔 한 명이 4~5개의 가게를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4~5년 전 샤로수길에 첫 가게를 오픈해 자리 잡은 뒤 다른 콘셉트의 가게를 또 다시 창업한 곳들이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상인들 상당수가 이 상권의 ‘투자 가치’를 아직까지는 높게 내다보고 있다. 임대 시세 상승 폭이 점점 가팔라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서울대입구역의 대로변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한데다 프랜차이즈가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샤로수길은 이제 막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 단계다. 이 상권과 어우러질 만한 경쟁력을 갖춘 가게들이 늘어날수록 상권 또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최기호 낭만싸롱 사장은 “상권 내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서비스 경쟁력이 없어 폐업하는 가게들도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며 “색다른 콘텐츠로 승부할 수 있다면 아직은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권”이라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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