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창출했더니 돌아온 건 차별과 서자(庶子) 취급이었다.”

22일이면 ‘중견기업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중견기업특별법) 시행 2년을 맞지만 중견기업인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중견기업인들은 “특별법을 뒷받침할 관계 법령 정비가 제대로 안돼 여전히 조세·금융·연구개발 등의 분야에서 차별과 규제에 놓여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흔들리는 '경제 허리' 중견기업] "기업 키워 일자리 늘렸더니…기다리는 건 차별과 서자 취급"
○R&D 지원의 ‘사각지대’

중소기업청 최근 조사(2014년)에 따르면 공공연구기관으로부터 그해 기술을 이전받은 중견기업은 2.6%에 불과했다.

상당수 중견기업은 연구개발(R&D) 지원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R&D 투자가 필수적이지만 정부 지원은 중소기업에 쏠려있다. 유태경 루멘스 회장은 “좁은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에서 외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기술이 필요한데 정작 중견기업은 기술 이전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자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하고 싶은데 정부의 각종 지원사업에서 중견기업은 뒷전”이라고 하소연했다.

○“우린 참 바보 같은 사람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중견그룹을 중소기업 몇 개로 쪼개면 (규제를 피할 수 있어) 이런 고민을 안 해도 되지만 사명감 하나로 버티며 기업을 키워왔다”며 “우린 참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견기업 지원책을 마련하는 중소기업청 ‘중견기업정책국’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란 게 기업인들의 설명이다. 중견기업정책국은 2012년 4월 산업통상자원부(당시 지식경제부)에 생겼다가 2013년 중기청으로 이관됐다. 중견기업인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낀 중견기업이 체계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관련 업무를 다시 산업통상자원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진식 심팩(SIMPAC) 회장은 “(중기청은 법률 제안권이 없는 데다) 중소기업을 돌보는 곳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이해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업무협조를 위해 여러 부처를 돌아다니다 보면 서글프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완화했다지만 ‘3대 규제’ 여전

중견기업연구원은 공공조달시장 ‘판로 규제’, 중소·중견기업 간 ‘차별 규제’, 중소기업이 아니면 대기업으로 간주하는 ‘법령 규제’를 ‘없애야 할 3대 철폐 대상 규제’로 꼽고 있다. 판로 규제 탓에 정부와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공공조달시장에서 상당수 중견기업은 참여를 제한받는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많은 기업이 인력 조정, 기업 분할 등의 ‘꼼수’를 써서 중소기업을 유지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김대륭 신성솔라에너지 사장은 “이러다가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중견 및 중소기업들로 가득한 후진적 경제 생태계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도 전문화된 중견기업을 어렵게 한다. 오랜 기간 한 분야에서 성장한 전문 중견기업들은 중소기업이 아니란 이유로 사업 철수, 축소 등의 압박을 받는다. 장류(醬類)업체 샘표식품은 장류가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자 군부대와 공공기관에 납품이 안돼 전전긍긍하고 있다.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은 “우리 제품이 중소기업 제품보다 확실히 품질이 좋은데, 소비자에게도 안타까운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구본학 쿠쿠전자 사장은 “TV홈쇼핑조차 중소기업 의무편성 비율이 있어 전문 중견기업이 차별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