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꽃피우는 기업문화재단] 문화 한류 열풍 뒤엔 기업문화재단 있다
영국 출판사 포르토벨로의 편집자들은 2014년 데버러 스미스가 영어로 옮긴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번역 원고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하지만 작품성만 믿고 출판을 결정하기엔 부담이 컸다. 이들은 그해 런던도서전에서 만난 한국의 대산문화재단 관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대산문화재단은 출판비용 6000달러를 흔쾌히 지원했다. 그 덕분에 지난해 1월 《채식주의자》 영문판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출판됐고,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기업문화재단이 문학·클래식·미술 등 순수예술 분야에서 한류 열풍을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단지 경제적 도움에 그치지 않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창작 활동은 물론 해외 진출까지 지원해 성과를 내고 있다.

○체계적 지원으로 세계 진출 발판 마련

[K컬처 꽃피우는 기업문화재단] 문화 한류 열풍 뒤엔 기업문화재단 있다
대산문화재단은 1992년 설립 당시부터 한국 작품의 해외 출판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매년 공모를 통해 20편의 작품을 선정해 편당 5000~6000달러를 제공한다. 이 재단이 번역과 출판을 지원한 시인 고은의 《만인보》와 소설가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지난해 미국 유명 문예지 WLT 선정 ‘주목할 만한 번역도서 75종’에 선정됐다. 이정명의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도 맨부커상에 통합된 ‘인디펜던트 포린 픽션 프라이즈’ 후보작 13편 중 하나로 뽑혔다.

클래식 유망주들도 기업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세계 무대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음악가는 1600명이 넘는다. 그중 조성진 김선욱 선우예권(이상 피아노), 신지아(바이올린), 함경(오보에) 등은 국제 콩쿠르 수상을 계기로 세계 무대에서 더욱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 재단의 박선희 음악사업팀장은 “충분한 기량을 갖춘 클래식 연주자들을 외국 기획사에 소개하고 데뷔 무대에 드는 비용의 30~40%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데뷔 비용뿐 아니라 5년간 항공료를 지원해줘 부담 없이 해외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미술 분야에서도 여러 재단이 신진 작가 발굴 및 해외 활동 지원에 나서고 있다. 설치미술가 서도호, 양혜규, 이완 등을 후원한 삼성문화재단이 대표적이다. 이 재단은 실험정신이 강한 작가들이 리움미술관 등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01년부터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을 만한 신진 작가를 소개해온 ‘아트스펙트럼’전을 통해 이형구, 문경원, 김성환 등을 세계에 알렸다.

○데뷔 무대 만들어주고 악기도 대여

이들 재단은 한두 번의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영재 양성부터 해외 활동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한다. 오디션에서 초등학생·중학생 예술 유망주를 뽑아 매년 10~20명에게 리사이틀 무대를 열어준다. 지난해 쇼팽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첫 데뷔 무대도 2005년 금호영재콘서트였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어린 나이에 자신만의 무대를 갖는 것은 신선한 자극을 줄 뿐 아니라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준다”고 설명했다. 악기도 무상으로 빌려준다. ‘악기은행 제도’를 통해 총 10점의 고가 악기를 3년 단위로 빌려준다. 신지아, 클라라 주미 강 등이 혜택을 받았다.

대산문화재단은 대산청소년문학상을 통해 매년 문재(文才)가 뛰어난 중·고등학생들을 선발해 유명 작가와의 만남 등을 주선한다. 미등단 혹은 등단 10년 이하 문인에게 창작기금 1000만원도 지원해 준다. 삼성문화재단은 신진 미술가들이 해외에서 창작 및 교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입주작가 프로그램인 ‘씨떼아뜰리에’를 운영하고 있다. 1996년 파리국제예술공동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50㎡의 아틀리에를 2060년까지 장기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

김희경/양병훈/선한결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