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측 입장 추가하고, 대우조선 매각에 이어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까지의 과정의 세부내용을 보완함.>>
8년 전 매도자-원매자로 만나…대우조선 분식회계, 법원 판단에 영향 준 듯
대법 판결로 한화는 보증금 돌려받을 길 열려…산은 '당혹' 한화 '환영'

대법원이 14일 한화케미칼이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낸 이행보증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냄에 따라 한화가 보증금을 일부라도 되돌려받을 길이 열렸다.

이행보증금 3천150억원을 둘러싸고 한화그룹과 산은이 벌여온 법적 공방이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번 판결로 산은은 당혹스러워하는 한편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된 한화는 판결을 반기고 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기로 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자전환을 거쳐 대우조선의 최대주주가 된 산업은행은 경영이 정상화된 대우조선의 주가가 6만5천원까지 오르자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할 기회로 보고 공개경쟁입찰로 매각에 나섰다.

"매각대금을 적기에 회수하고, 회사의 장기 발전에 기여할 책임 있는 경영 주체에 경영권을 이전하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그해 10월 한화와 포스코, GS, 현대중공업이 참여해 4파전 구도로 치러진 매각 입찰에서 한화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지목됐다.

6조3천2억 원이라는 가장 높은 인수가를 제시한 게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대우조선을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며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11월 산은과 한화 측은 연말까지 최종 매매계약을 맺고 이듬해 3월 전 잔금을 납부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때마침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파고로 자금 조달이 어려움을 겪고, 대우조선 노조의 거제 옥포조선소에 대한 확인 실사 거부로 실사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이듬해 1월 대우조선 매각은 결국 무산됐다.

당초 전년 연말까지였던 본계약 시한이 이미 한 달 연기된 다음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화는 본계약 체결 연기, 분할 납부 등으로 사실상 대금 납부를 연기해달라고 여러 번 요구했다.

매각이 무산되면서 산은은 한화가 MOU 체결 때 납부한 이행보증금 3천150억 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한화는 2009년 6월 법원에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는 조정 신청을 냈다.

예측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닥친 데다 인수의 필수 절차인 실사를 대우조선 노조의 저지로 하지 못해 인수가 중단된 만큼 일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정 심리에서 산은과 한화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이 사안은 결국 민사소송으로 넘어갔고, 1심(2011년)과 2심(2012년) 법원은 모두 원고(한화) 패소란 판결을 내렸다.

통상 법률심이 이뤄지는 대법원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날 대법원은 "3천150억 원에 이르는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하는 것은 부당하게 과다하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고법의 심리 결과에 따라 한화가 이행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열린 것이다.

대법원의 이런 판단에는 최근 대우조선이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를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점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에만 5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2013∼2014년에 영업이익 기준으로 1조5천342억원의 분식회계 정황이 포착됐다.

여기에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나서면서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수사는 점점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검찰은 2006∼2012년 재임한 남상태 전 사장 시절에도 대학동창 등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이득을 취하는 등 경영 비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수사에서 혐의가 입증된다면 2008년 인수전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한화 주장대로 실사를 제대로 했다면 분식회계가 확인되며 매각이 무산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진 소송전의 최종 판단은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며 원심이 확정될 것으로 내심 기대해 왔던 산업은행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오늘은 간단한 판결만 나온 것으로, 자세한 이유에 대해서는 1주일가량 뒤에 판결문이 나와야 확인할 수 있다"면서도 "당황스러운 결과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판결문을 받아봐야 정확한 판결 취지를 알겠지만, 상고의 취지를 인정해준 대법원의 결론을 존중한다"며 "파기 환송심에서 성실히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는 당시 계약 무산의 주 요인이 확인 실사를 하지 못한 데다 최종계약 체결 전 검토가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도 받지 못했던 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당시 금융위기로 인해 자금 조달비용이 늘기는 했지만, 조달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결국 자금 문제가 계약 무산의 원인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고동욱 기자 sisyphe@yna.co.kr,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