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시 낡은 차고에서 창업
비철금속연구원서 초고속 승진
"꿈 펼치자" 직원 20명으로 창업…충전용 배터리 핵심부품 생산

시련은 있지만 포기는 안한다
2003년 시안친촨자동차 전격 인수…주가 급락했지만 버핏 투자로 반전
"동급 제품 절반 가격에 판다" 원칙…전기자동차 3대 중 1대는 비야디 제품

밀어내기 물량·사고 등 악재에도 중국 전기차 보조금 등 지원
스마트카 집중 투자…자산 7조 육박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세계에서 전기차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전기차 선두회사인 테슬라가 있는 미국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은 중국이다. 지난해 총 20만3357대(SNE리서치 조사)를 생산했다. 전년 대비 350% 늘었다. 이 가운데 중국의 비야디(比亞迪·BYD)라는 자동차 회사가 생산한 제품이 석 대 중 한 대꼴이다. 지난해 6만1772대를 팔았다. 테슬라(5만557대)보다 많다.

정보기술(IT), 자동차, 신에너지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BYD는 ‘오마하의 현인’이란 별명이 있는 워런 버핏 미국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투자한 회사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BYD는 Build Your Dreams(당신의 꿈을 이뤄라)라는 뜻이다. 휘발유로 달리는 자동차와 전기차를 모두 생산한다. 승용차는 물론 버스, 지게차, 도로 청소차량 등으로 영역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모노레일 시장 진출도 추진 중이다. 중국 광둥, 베이징, 상하이, 산시 등에 9곳의 생산시설을 뒀다.

29세에 연구원 박차고 나와 창업

맨주먹으로 시작해 BYD를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키운 것은 왕촨푸(王傳福) 회장(50)이다. 그는 1995년 불과 29세에 BYD를 차려 지금 세계 1위 전기차 회사(생산량 기준)로 키웠다.

1966년 안후이성에서 태어난 왕 회장은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다. 그는 빨리 취업해 돈을 벌기 위해 명문고 대신 일반고를 택했다. 그리고 중난(中南)공업대에서 야금물리화학을 전공한 뒤 1990년 베이징의 비철금속연구원에 입사했다. 입사 5년여 만에 부주임으로 승진해 26세에 처장(處長)을 달았다. 중국에서 가장 젊은 처장이라고들 했다.

1993년 비철금속연구원은 선전에 비거(比格)라는 배터리 회사를 차리고 왕촨푸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1995년 그는 금융업에 종사하던 사촌형에게 250만위안(약 4억여원)을 빌려 배터리 회사 비야디과학기술회사(比亞迪科技公司)를 창업했다.

배터리 회사에서 자동차 회사로

직원 20명이 선전시의 낡은 차고에서 시작했다. 당시 배터리업계는 일본이 장악했고 중국 기업은 조립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왕 회장은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충전용 배터리 핵심부품 생산을 시작했다. 일본이 용량도 작고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니켈카드뮴 전지 생산을 중단하자 왕 회장은 이를 기회로 니켈카드뮴 전지로 사업을 넓혔고, 하루에 4000개까지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세웠다. 파나소닉, 소니, GE 등이 BYD 고객사가 됐다.

리튬배터리 생산에 대규모로 투자해 2000년에는 모토로라에 리튬배터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1년 이 회사의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분야별로 세계 2~4위까지 올라갔다. 이를 바탕으로 왕 회장은 2002년 홍콩 증시에 BYD를 상장했다.

배터리 회사에서 자동차 회사로 성격을 바꾼 것은 2003년이다. 왕 회장은 2억6900만위안을 주고 산시성의 시안친촨자동차 지분 77%를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사실 시장에선 그가 무리했다고 생각했다. 주가는 순식간에 30% 넘게 떨어졌다.

유망한 배터리 회사의 실패한 인수합병(M&A)이 될 수도 있었지만, 상황은 왕 회장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2004년 중국 정부가 자동차 공장 신설 투자액을 2억4000만달러 이상으로 제한하면서 신규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버핏 측에서 BYD에 주목하고 투자 의향을 밝혔다. 데이비드 소콜 당시 벅셔해서웨이 대표가 직접 BYD에 찾아와 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왕 회장은 지분 10% 이상의 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벅셔해서웨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막 시작되던 2008년 9월 BYD 지분 10%를 18억홍콩달러를 주고 샀고, BYD 주가는 치솟았다.

당시 찰리 멍거 벅셔해서웨이 부회장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왕 회장이 “발명가 에디슨과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을 합친 듯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가격 대비 성능 ‘월등’

BYD의 매출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약 50%에 육박한다. 처음부터 자동차 전문 회사는 아니었지만, 자동차 회사 인수 후 2008년 첫 하이브리드카 F3DM을 선보였고 2011년 E6를 내놓는 등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추가해왔다. 특히 배터리 분야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차세대 차량 시장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회사가 됐다. 특히 대중교통 분야에서 상당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왕 회장은 자동차 시장에 진출할 때 ‘타 회사와 동급의 제품을 절반 값에 판다’는 경영원칙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 대비 성능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BYD가 출시한 F3, F6 등은 이런 원칙을 지켜 생산한 제품이다. 외국계 회사 제품의 반값에 불과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는 “BYD가 만든 제품은 다른 회사의 비싼 제품보다 더 오래 쓸 수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이 같은 전략은 다소 바뀌었다. 한때 2009년까지 5년 연속 해마다 두 배로 늘어나던 자동차 판매량이 성장을 멈췄다. 자동차 대리점을 마구 늘리며 밀어내기식으로 물량을 쏟아낸 것이 한계에 달했다.

싼 인건비만 생각해 자동화 투자를 덜 했다가 인건비가 오르자 이익이 감소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형차 F3 이후 히트작이 없었고, 택시로 이용되던 전기차 E6가 추돌사고 후 불이 붙어 3명이 사망하는 악재도 생겼다. 주가가 떨어지면서 ‘버핏의 골칫거리’라는 식의 언론 보도도 잇따랐다.

왕 회장은 기본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품질을 향상시키고 차종을 다양화했다. 실적은 제자리를 되찾아가고 있다. 주가는 2012년 중순 대비 5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전기차·스마트카 시대 ‘준비된 기업’

중국 정부가 전기차 한 대에 최대 10만위안(약 171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차량가격의 10%에 달하는 세금을 깎아주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책을 펴고 있어 시장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왕 회장도 시안의 전기차 생산대수를 세 배로 늘리는 등 더 적극적인 투자행보를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도 대단하다. “유럽 사람들보다 중국 젊은 엔지니어 실력이 낫다”고 할 정도다.

올해 초 포브스가 추정한 왕 회장의 자산 규모는 53억달러(약 6조9000억원)다. 중국에서 24위, 세계에서 338위다. 250만위안으로 조촐하게 시작한 회사를 여기까지 키워낸 것은 과감한 도전이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나는 행동에 옮기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려 한다”는 그의 발언은 유명하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산’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박하지만, 전기차·스마트카 등 차세대 자동차 시장이 확대될수록 BYD의 존재감은 갈수록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