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 시중은행 부행장 만나 협조요청 예정
어렵게 수주해도…보증 못받아 '발동동'
금융당국 "은행권 리스크 관리 과도…정상기업은 영업토록 해야"


조선사들이 어려운 여건에서 수주에 성공했는데도 금융권이 리스크 축소를 이유로 보증을 꺼리는 상황이 지속되자 주채권은행이 설득에 나섰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은 이날 오후 4시 하나은행 본점에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을 만나 선수금환급보증(RG)을 제때 발행해 달라는 취지의 협조 요청을 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정상적 수주에 대한 RG 발급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선박 건조 일정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의 운전자금이 끊기지 않게 해달라는 당부도 하기로 했다.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아달라'는 일종의 호소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중도에 파산할 경우 선주에게서 받은 선수금을 금융회사가 대신 돌려주겠다고 보증하는 것을 뜻한다.

RG가 발급돼야 수주계약이 성사된다.

대형 조선사들은 은행에서 1년 단위로 수조원대 RG 발급 한도를 받아놓고 수주계약을 맺어왔다.

그러나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에 나서면서 RG 규모가 축소돼 대형 조선사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말 SK E&S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척을 수주했다.

'수주 가뭄'에 시달리던 현대중공업에 희소식이었지만 주요 은행이 RG 발급을 한 달 가까이 거부해 수주가 무산될 뻔했다.

결국 주채권은행(KEB하나은행)과 수출입은행이 1척씩 RG를 발급해줘 위기를 넘겼다.

성동조선해양은 지난달 초 그리스 선사로부터 정유 운반선 4척을 수주했다.

올해 들어 첫 수주였다.

성동조선은 선수금을 받기 위해 채권단에 RG 발급을 신청했지만, 지금까지 보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주채권은행이 산업은행이라 비교적 신속하게 RG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어렵사리 수주가 재개되는 분위기가 됐는데도 시중은행들이 RG 발급 등에서 발을 빼는 상황을 금융당국도 우려하는 모습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조선업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를 줄이고 싶은 은행들의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하다"며 "하루아침에 여신을 회수해가면 멀쩡한 기업도 영업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권이 리스크 관리를 이렇게 과도하게 하면 살아날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은행들이 여신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금감원은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자금난에 처한 중소형 해운·조선사의 유동성을 지나치게 죄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박세춘 금감원 부원장은 이 자리에서 "조선·해운업이 취약산업으로 분류되다 보니 중소형 조선·해운사들이 특히 자금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상기업인데 취약업종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대출을 회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은행들은 수주 부족에 따른 조선사들의 매출 급감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RG 발급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조선사들이 수주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RG 협조를 해달라고 하고 있다"며 "채권단 관리를 받는 조선사의 경우 추가 부실이 우려돼 신규 수주가 타당한지를 꼼꼼히 살펴보다 보면 RG 발급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박의래 기자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