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열린 ‘바람직한 상법 개정안 추진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김선정 동국대 교수(왼쪽부터),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전삼현 숭실대 교수,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이 토론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8일 열린 ‘바람직한 상법 개정안 추진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김선정 동국대 교수(왼쪽부터),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전삼현 숭실대 교수,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이 토론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사진)가 지난 4일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 투기자본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종인 상법 개정안, 투기자본의 이사회 장악 도울 수도"
바른사회시민회의가 8일 서울 북창동 바른사회시민회의 회의실에서 연 ‘바람직한 상법개정안 추진방향 모색’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인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결합하면 투기자본이 적은 지분으로 회사 이사회를 사실상 장악할 수 있다”며 “경영권이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먹튀 세력 키우는 개정안

토론회에선 상법 개정안이 입법 취지인 소수주주의 주권 보호보다는 투기자본의 활동영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잇따랐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개정안에 따라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해 별도로 감사위원을 선임하게 되면 경영진 선임에서 대주주의 영향력이 대폭 축소된다”며 “지분 쪼개기를 통해 의결권 제한규정을 피할 수 있는 투기자본이 기업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개정안 내용대로 우리사주조합 등 소수주주가 감사위원으로 들어갈 경우 투기자본의 이사회 장악 속도는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상법 개정안, 투기자본의 이사회 장악 도울 수도"
예컨대 이사 7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는 현행 상법상 사외이사가 과반수여야 하기 때문에 사내이사는 3명까지만 가능하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별도 선임제도가 도입되면 투기펀드가 사내이사 몫 중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고, 감사위원회에도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이는 기업사냥꾼이 대리인을 기업의 심장인 감사위원회에 심어놓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단순투표제’와 달리 선임되는 이사진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몰아주기’식 투표를 통해 소액주주 대표가 사외이사로 진출하는 길을 만들어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감사위원 강제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를 통해 지주회사 이사회를 장악한 외국계 펀드가 집행임원까지 선임한다면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반에 대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SK그룹이 경험한 투기자본 소버린과의 긴 경영권 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집중투표제를 채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보호장치도 도입해야

개정안이 소수주주 보호에만 편중됐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전 교수는 “경영권과 소수주주의 권리 보호라는 양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상법의 주된 목적”이라며 “영국과 미국의 상법은 황금주, 포이즌 필 등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두고 있지만, 한국에선 이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임원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입한 일본도 경영권 침해와 자회사 주주의 권리침해를 이유로 100% 자회사에 한해서만 적용하고 있다”며 “칠레 멕시코 러시아만 도입하고 있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하자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은 한국을 세계 ‘상법 실험장’으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은 “개정안대로 전자투표제도를 의무화하면 막대한 규모의 전산 투자가 필수적”이라며 “중소기업에 또 다른 경영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시세차익을 보고 투자를 하는 소액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참여할 의사가 큰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김 대표 주장대로 상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