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무역협회 창립 70주년 기념식 오케스트라 지휘
"구치소서도 악보 보며 지휘…음악 들으면 해소되는 느낌"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설마 했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결국 현실화됐지만 우리 수출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오히려 하반기에는 수출이 조금 나아질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최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브렉시트를 계기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할지 아니면 오히려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반성하는 쪽으로 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며 "브렉시트로 인한 영향을 지금 단계에서 지나치게 계량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의 대(對)영국 수출 규모가 대단히 큰 것도 아닌 데다 영국과 EU도 이혼하듯이 완전히 갈라서기보다는 봉합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브렉시트가 세계적인 신고립주의나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와중에 브렉시트를 계기로 고립주의로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위기도 동시에 감지되고 있다"면서 "우리로서는 희망적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심각한 부진에 빠진 우리 수출이 하반기 반등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중소·중견 기업의 수출이 늘고 있다는 점은 좋은 사인"이라며 긍정적이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최근 우리나라의 하반기 수출액은 2천605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0.9%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선진국의 경기가 조금씩 회복되고 신흥국의 수입 수요가 확대되면서 국제유가가 상승하리라는 근거에서다.

김 회장은 특히 화장품과 문화 콘텐츠의 수출이 선전하는 상황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우리가 화장품으로 세계를 석권하고 영화를 해외에 판다는 것을 예전에 상상이나 했었냐"며 "이런 점을 보면 어떤 상품은 되고 어떤 상품은 안된다고 예단하는 생각은 없애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기존 주력 제조업이 흔들리는 점은 우려했다.

김 회장은 "정보통신기술(ICT),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지금은 융합의 시대인데 우리가 선도는 하지 못할망정 충분히 따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우리 기업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려면 경제가 훨씬 더 자유스럽고 유연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콩 놔라 팥 놔라 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자율적인 환경 속에서 책임 있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며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인수·합병(M&A)도 이뤄지면서 경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김 회장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 유명하다.

헨델의 '메시아'나 베르디의 '레퀴엠' 등은 전곡의 멜로디를 모두 외울 수 있는 수준이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요청과 관련한 직무 유기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레퀴엠' 악보를 넣어달라고 했을 정도다.

김 회장은 "죄를 지어서 구치소에 갔다고 생각을 하지 않은 상황이라 마음을 달랠 무언가가 필요했다"며 "워낙 많이 들어서 곡을 외는 '레퀴엠' 악보를 보면서 손을 흔들며 지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1년에는 아마추어로는 처음으로 KBS교향악단을 지휘한 바 있다.

당시 KBS가 주최한 신년 특별음악회에서 차이콥스키의 '슬라브 행진곡'을 지휘해 박수를 받았다.

오케스트라 지휘는 우연히 이뤄졌다.

KBS교향악단의 정기 회원이었던 김 회장이 교향악단 회원지와 인터뷰할 때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기회가 되면 지휘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답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KBS교향악단 측이 신년 음악회 프로그램 가운데 회원을 위해 마련한 이벤트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것.
김 회장은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거절했는데 하도 집요하게 해달라고 해서 결국 승낙했다"며 "사실 평소 집에서 튀긴 국수가락을 흔들며 지휘 흉내를 하던 나를 기억하는 와이프도 '당신 제정신이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휘자는 동원되는 25~26개 악기를 모두 볼 줄 알아야 해서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며 "무식한 사람이 용감했던 것"이라고 웃었다.

그랬던 그가 오는 15일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리는 한국무역협회 창립 7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또다시 지휘 연단에 오른다.

이번에도 15년 전과 같은 곡을 지휘할 예정이며 서울 강남구 소속인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춘다.

이번에는 김 회장이 '왕년의 지휘자'였다는 점을 알고 있는 무역협회 직원들이 등을 떠밀었다.

"15년 전에는 오케스트라 스코어(총보)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지휘봉을 들었어요.

그 사이 세상이 좋아져서 지휘 영상물도 여럿 봤고 음악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는 조용한 곡을 고르려고 했는데 70주년이라는 축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슬라브 행진곡'을 선택했어요.

더 박력 있고 재미있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김 회장의 클래식 음악 사랑은 집안 내력과도 연관이 깊다.

부친인 김영환 목사는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과 숭실전문학교 동문으로 두 사람이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아버지의 졸업 앨범을 살펴보면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뜻의 '제금가(提琴家)'라는 호칭이 붙어 있었다"며 "누님들도 피아노를 치고 해서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직위가 올라갈수록 한계를 초월할 정도로 큰 고민이 생기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며 "그럴 때면 덮어 놓고 두어 시간 음악을 들으면 몸의 어떤 것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며 클래식 음악 예찬론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co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