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알면서도 지원…책임론 불거지나
일본이 적극 제기하는 통상마찰 일어날수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천억원 지원 방안을 논의한 지난해 10월 서별관회의에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이 전문 공개됐다.

정부는 관련문건에 대해 시장과 이해 관계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기 때문에 이후 미칠 파장에 관심이 집중된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6개 기관 공동 명의로 지난해 10월 22일 열린 서별관회의에 보고됐다는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지원 방안' 문건을 4일 공개했다.

A4용지 23페이지 분량의 이 문건에는 ▲대우조선에 대한 실사 결과 ▲법정관리·워크아웃·국책은행 주도 정상화 등 대응방안에 따른 영향 ▲자구계획 및 다운사이징(downsizing) 방안 ▲부실 책임 규명 및 제재 방안 등이 상세하게 담겼다.

서별관회의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를 주축으로 하며 구조조정을 비롯한 경제 현안을 막후에서 결정하는 고위 당국자들의 비공식 모임이다.

청와대 본관 서쪽 별관에서 열린다고 해 '서별관회의'로 이름 붙었다.

이 회의는 언제 무엇을 논의했고, 누가 참석해 어떤 의견을 냈는지 기록이 남지 않는 회의체다.

회의 문건이 전문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우조선 지원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서별관회의 자료가 공개되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지만, 그간 정부는 자료를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서별관회의 내용과 날짜, 참석자 등을 밝히라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서별관회의를 위해 금융위가 마련한 자료는 있지만, 속기록이나 발언록은 존재하지 않고 관련 자료공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서별관회의를 위한 관련 자료 중 결정되지 않은 사항들이 공개된다면 시장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게 임 위원장의 논리였다.

임 위원장은 "A안, B안, C안처럼 여러 안이 논의됐고 각 안에 따라 누가 손해를 봐야 하느냐 등 이해관계가 달려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 조선업 구조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공개 불가 이유를 설명했다.

홍익표 의원이 이날 금융위원회가 작성한 10월 22일 서별관회의 내용을 입수했다고 밝혔을 때도 금융위는 "문건 출처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논의 안건인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없는 자료"라며 "회사·협력업체·근로자 및 채권단·주주·투자자 등 이해 관계자들에게 부당한 손실이나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경제분야 대정부질문 때도 홍 의원은 이 문건에 대해 "금융위원회 등이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임 위원장은 "(표지와 목차 등의) 형식 자체는 (서별관회의에 보고된 문건과) 동일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면서도 문건 출처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맞섰다.

논란이 됐던 문건이 실제 서별관회의에 보고된 것으로 확인된다면 구조조정 책임론에 대한 논란은 더욱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는 대우조선 지원을 결정하면서 스스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비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은행 주도 회생 방안의 단점으로 "내부 구조조정 추진 유인 약화", "추가손실 발생 시 산은·수은의 자금지원 부담 가중"을 명시하기도 했다.

정부가 당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해양이 회생하지 못할 가능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지원을 결정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문건 공개가 정부 우려대로 통상 마찰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지난달 OECD 조선 분야 회의에서 한국 산업은행 등이 조선업체에 거액의 금융지원을 하는 데 대해 시장 왜곡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문서는 일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유럽연합(EU)도 대우조선에 대한 국책은행의 유동성 지원이 사실상 정부의 보조금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에도 대우조선은 산은 등을 통해 2조9천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았고, 이 과정에서 EU가 정부의 지원을 문제 삼아 WTO에 제소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당시 WTO는 한국 정부의 지원이 보조금이 아니라고 판단, EU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