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국하자마자 출근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장기간 해외 출장을 마치고 3일 일본에서 귀국했다. 서울 김포국제공항 청사를 나온 신 회장이 집무실로 가기 위해 차에 타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귀국하자마자 출근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장기간 해외 출장을 마치고 3일 일본에서 귀국했다. 서울 김포국제공항 청사를 나온 신 회장이 집무실로 가기 위해 차에 타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3일 서울 방화동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약 4주 만에 귀국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첩첩산중인 롯데그룹의 현실을 보여주듯 다소 잠긴 목소리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신 회장은 지난달 7일 출국해 멕시코와 미국 출장을 거쳐 일본으로 이동,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주총에서 회사 경영권은 방어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자리를 비운 사이 측근들이 구속되거나 줄소환됐고, 이복 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오너 일가 중 처음 소환됐다. 신 이사장은 구속영장이 청구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10일 롯데그룹을 전격 압수수색한 뒤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검찰 수사가 다시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은 부친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치매약 복용 사실을 공개하며 경영 책임을 동생인 신 회장에게 돌리고 있다.

신 회장은 난국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귀국 당일 출근하고 다음날 임원 회의를 연다. 어수선한 그룹 분위기를 추스르고 거물급 변호사들을 앞세워 검찰 수사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고개 숙인 신동빈, 신영자 '롯데입점 로비' 질문에 "몰랐다"
◆오너 일가 정조준한 검찰

검찰은 신 회장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신 회장이 계열사에서 받은 연 200억원대 자금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집중 조사 중이다. 롯데케미칼이 원료 수입 과정에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넣어 이익을 몰아줬다는 의혹에도 롯데그룹 정책본부가 연루됐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롯데 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일본 롯데물산이 거부하자 한·일 사법공조 카드를 꺼냈다.

핵심 임원 조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다른 이슈지만 지난달 11일엔 신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책임을 물어 구속했다. 롯데그룹 자금관리 업무를 맡아온 채정병 롯데카드 대표와 이봉철 정책본부 지원실장(부사장)도 불러 조사했다. 정책본부 핵심 임원들을 추가 조사해 ‘그룹 핵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과 정책본부 황각규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사장)을 소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너 일가 수사도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은 롯데면세점 입점 비리 등과 관련해 지난 1일 신 이사장을 16시간 동안 강도 높게 조사했다. 신 이사장은 롯데면세점 입점 대가로 업체들로부터 35억원 안팎의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회사에 근무하지 않은 딸들에게 급여를 주는 방식으로 20억~30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린 정황도 확인됐다.

검찰은 이르면 4일 신 이사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전체를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눈다면 현재는 초기의 중후반 정도에 와 있다”고 말했다.

◆내우외환 맞서는 롯데

신 회장은 이날 귀국 직후 서울 소공동 집무실로 출근해 그룹 현안을 챙겼다. 4일 주요 임원들과 회의를 연다. 호텔롯데 상장을 무기 연기한 것에 대한 후속 대책을 세우고 신 전 부회장 측이 신 총괄회장의 치매약 복용 사실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신 회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본인을 상대로 추가 소송을 제기하려는 신 전 부회장에 대한 대처 방안을 묻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신 이사장의 롯데면세점 입점로비 의혹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엔 “몰랐다”고 답했다.

검찰 수사는 김앤장을 중심으로 대비한다. 서울중앙지검장 출신인 천성관 변호사와 서울고검장을 지낸 차동민 변호사가 롯데 변호인단을 이끈다. 이들은 롯데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둘러싸고 검찰과 치열한 공방을 벌이게 된다. 롯데케미칼이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 거래한 것은 외환위기 당시 일본 롯데물산의 높은 신용도를 활용해 이자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할 계획이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는 불법성이 인정되는 만큼 신 이사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들의 처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항간엔 검찰이 국면전환용으로 롯데 수사 카드를 꺼냈다는 얘기가 있지만 롯데가 장기간 폐쇄적인 가족기업 형태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불법 행위를 저질러 검찰 수사를 부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인설/박한신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