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2016년 확대경영회의’에서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SK 제공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2016년 확대경영회의’에서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SK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뿌리부터 바뀌지 않으면 끝장”이라며 계열사 경영진에 비상한 각오를 주문했다. 최 회장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현실화, 18개월 연속 수출감소 등 악재가 겹쳐 올 하반기엔 미증유의 경영환경이 지속될 것인 만큼 환골탈태하는 수준의 변화와 혁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SK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16년 SK 확대경영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 회장이 확대경영회의를 통해 그룹 전체에 메시지를 던진 건 특별사면 직후인 작년 8월17일 이후 처음이다. 최 회장은 이날 넥타이를 매지 않은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미국 인기 강연 프로그램인 TED 방식으로 강연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넥타이 풀고 소매 걷은 최태원 "변하지 않는 기업, 서든데스할 것"
최 회장은 이날 오전 11시까지 강원 홍천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친환경에너지타운 방문행사에 참석한 뒤 곧바로 이천으로 이동해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했다. 최 회장은 협의회가 끝난 오후 3시부터 확대경영회의를 열어 약 2시간 동안 세 번의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강연 주제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나’ ‘SK의 철학은 어떻게 구현해야 할 것인가’ 등 세 가지였다. 오전에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짙은 회색 정장 차림이었던 최 회장은 베이지색 바지와 흰색 셔츠로 갈아입고 강연에 나섰다.

최 회장은 “요즘과 같은 경영환경에서 변하지 않는 기업은 천천히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죽을 것”이라며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돈 버는 방법, 일하는 방법, 그룹의 자산구성 등 세 가지 측면에 변화를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출퇴근 문화, 근무시간, 휴가, 평가·보상, 채용 등이 과연 지금의 변화에 맞는 방식인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자산을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관리하면 변화 속도에 맞춰 준비할 수 있어 어떤 사업에 어떤 자산을 투입할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각 계열사가 변화의 방향과 방법 등에 대한 해법을 오는 10월까지 제시할 것”도 지시했다. SK CEO들은 오는 10월 열리는 CEO 세미나에서 각 계열사의 구체적인 변화전략 등을 최 회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TED 강연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격식을 갖춘 회의를 통해 변화를 주문하는 것 자체가 낡은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K는 최 회장의 이날 강연을 녹화해 4일 사내방송으로 전 직원에게 중계할 예정이다.

◆위기감 커지는 SK

최 회장의 이날 강연엔 점점 커지고 있는 SK 내부의 위기의식이 반영돼 있다. 최 회장은 “SK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고, 대부분의 계열사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에도 미치지 못 하는 등 각종 경영지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SK 임직원은 스스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SK 핵심 계열사 중 SK(주)와 SK이노베이션의 PBR이 각각 0.92배와 0.82배로 1배 밑이다. PBR이 1배를 넘지 못하면 시가총액이 순자산보다 적다는 의미다.

SK는 요즘 에너지(SK이노베이션) 통신(SK텔레콤) 반도체(SK하이닉스) 등 3대 핵심사업이 국내외 경영환경 악화로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전방산업인 정보기술(IT) 업황 악화에 따른 후폭풍 등으로 실적이 급격히 나빠졌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5618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5885억원)보다 64.6% 감소했다.

통신시장이 성장 한계에 부딪혀 고전 중인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 인수를 통해 콘텐츠 역량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작년 12월1일 시작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 작년 이후 지난 1분기까지 실적이 대폭 개선된 SK이노베이션은 브렉시트로 글로벌 유가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비상등’이 켜졌다.

◆최 회장, 공격모드로 전환하나

SK 안팎에선 “사생활이 문제가 됐던 작년 12월 이후 한동안 위축된 모습을 보이던 최 회장이 올 하반기부터 ‘공격모드’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은 올 상반기에 주요 계열사 현장 방문 등 일상적인 경영활동은 펼쳐왔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는 행사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SK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의 자율경영을 중시하는 최 회장은 자신이 직접 나서길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며 “메시지의 내용이나 전달방식 등을 봤을 때 최 회장이 SK 임직원에게 작심하고 변화를 주문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