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장 찾았다가 혀만 차고 발길 돌리는 축산농 수두룩
"사료값 올라 지금 소 들이는 건 모험"…신규 입식 신중

6월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6시 충북에서 제법 큰 축에 드는 옥천가축시장에는 개장에 맞춰 적재함에 소를 실은 차량이 줄이어 들어왔다.

가까운 보은·영동은 물론 충남 공주, 경북 김천 등지에서 소를 사고팔기 위해 새벽 어둠을 뚫고 달려온 차량들이다.

이 시장은 최근 전자경매시스템을 도입했지만, 한 달 2차례씩 중개사가 개입해 가격을 흥정해주는 중개 거래도 한다.

이날이 바로 중개 장이 서는 날이다.

충남 공주에서 송아지를 팔러 나온 김용기(69)씨는 "전자경매가 편리하지만, 소를 사고팔 때는 흥정을 거치는 게 제맛"이라며 "중개 거래에 맞춰 일부러 멀리서 송아지 9마리를 싣고 왔다"고 말했다.

◇ 거래사 분주한 흥정에도 거래는 '찔끔'
차량에서 내려진 소가 계류장에 들어서자 시장 안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중개사는 농민 사이를 바쁘게 오가면서 흥정을 붙이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분위기만 부산할 뿐 거래는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비싼 시세에 놀란 듯이 입을 쩍 벌리고 뒤돌아서는 사람도 많았다.

이날 거래된 송아지는 모두 7마리. 7∼8개월된 수송아지는 330만∼350만원, 같은 크기의 암송아지는 290만∼300만원대에 시세가 형성됐다.

큰소 거래도 12마리에 머물렀는데, 최고가는 725만원을 찍었다.

보은군 보은읍에서 한우 400마리를 사육하는 석덕수(59)씨는 "송아지 몇 마리 사러 왔는데, 값이 너무 비싸 25개월된 암소 1마리만 샀다"며 "일단 인공수정을 시도해보고, 여의치 않을 경우 비육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신에 성공하면 몇 달 뒤 내다 팔아도 100만원 정도 웃돈을 챙길 수 있지만, 비육할 경우 별로 남을 게 없다"며 "요즘 소를 들이는 게 모험이고 보니, 시장에서 눈치작전도 그만큼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한쪽 계류장에서는 생후 4개월된 암송아지와 함께 나온 2살짜리 암소가 700만원에 거래됐다.

소를 구입한 이남기(63)씨는 "송아지는 번식용으로 키우고, 어미 소는 비육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사료값도 크게 올라 소 1마리가 한 달 5만∼6만원 어치의 사료를 먹는다"며 "한해 순수 사육비로 100만원 안팎씩 들어 잘못했다가는 손해 볼 수도 있다 "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표정에는 이날 거래에 만족한다는 듯한 여유가 엿보였다.

◇ "소값 오를만큼 올랐다"…현장 불안감 커져
중개사들은 이날 거래량이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했다.

값이 너무 높게 형성돼 구입 시기를 다음 기회로 미룬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송아지 전문 중개사 한경범(59)씨는 "장날마다 20여마리의 송아지가 나와 이 중 80∼90%는 거래되는 데, 오늘은 출하 두수가 10여마리에 불과하고 거래량도 절반을 밑돈다"며 "값이 치솟으면서 소를 사는 농민들의 눈이 그만큼 깐깐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일 주기로 열리는 이 시장은 매월 15일과 30일은 중개 거래, 나머지는 경매 거래를 한다.

경매가 있는 날은 하루 100마리 넘게 거래되기도 한다.

보은옥천영동축협의 임중빈 과장은 "소값이 3년째 치솟자 농가 스스로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라며 "큰 소를 출하하고 그 자리에 송아지를 들이는 경우라면 몰라도 새로 사육 규모를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농협 축산정보센터가 집계한 이날 전국 22개 가축시장의 큰 소(600㎏) 가격은 암소가 595만5천원, 수소는 566만원이다.

1년 전보다 암소는 26.6%(125만원), 수소는 31.1%(134만원) 올랐다.

암송아지와 수송아지도 각각 434만원과 328만6천원으로 1년 새 37.5%(110만원), 36.8%(88만5천원) 값이 뛰었다.

몸집 큰 거세 한우의 경우 승용차 1대 값과 맞먹는 1천만원을 웃도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소값을 잡기 위해 정부는 최근 비육 한우 조기출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보통 30∼33개월에 도축하는 거세 한우를 앞당겨 시장에 내놓도록 유도하기 위해 장려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소값 상승폭이 사육비를 앞지르자 30개월 미만 거세 한우 출하 비율이 지난해 36%에서 올해 29%로 떨어졌다"며 "소의 출하 시기가 조금만 앞당겨 져도 한우값 진정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현실성 없는 탁상행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보은옥천영동축협 관계자는 "한우는 30개월 무렵부터 근내지방도가 높아져 등급이 향상되고 체중도 느는 데, 장려금 몇 푼 준다고 도축을 앞당기는 농가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대신 "소값을 잡으려면 송아지 공급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며 "2000년대 초 시행했던 송아지 다산 장려금제 등을 검토해야한다"고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bgi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