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품 원료인 원유(原乳)값이 처음으로 인하된다. 낙농진흥회가 현재 L당 940원인 원유 가격을 922원으로 18원 내리기로 엊그제 이사회에서 결정했다. 낙농가, 우유회사, 소비자, 학계 대표들이 ‘원유기본가격 조정협상위원회’를 세 차례나 열고 어렵사리 가격 인하안에 합의한 결과다. 이렇게 결정된 원유값은 8월1일부터 1년 동안 적용된다. 앞으로 흰우유 치즈 등 각종 유제품 가격도 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가격조정은 잘못 설계된 ‘원유가격 연동제’의 오류를 바로잡는 의미있는 진전이다. 원유가격을 둘러싼 낙농가와 유업계 간의 극심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2013년에 도입한 ‘원유가격 연동제’는 대표적인 시장왜곡 사례로 지목돼왔다. 가격 연동제 하에서는 생산비 증감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가격을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끼어들 틈이 없고 가격은 경직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유업체에 일정 수량을 떠안기는 ‘쿼터제’가 적용되다 보니 우유가 남아도는데도 원유값은 오르기만 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게 하고 결국에는 낙농가 시장도 파괴하는 ‘공멸의 게임’으로 이어졌다. ‘싼 수입원유가 있는데 비싼 국산원유를 사용하는 게 업무상 배임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그 결과는 원유재고 급증과 경영악화였다. 중소회사들의 부도가 이어졌고, 국내 최대 유업체인 서울우유도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불과 9억원이었다. 그나마 직원들에게 월급 일부를 유제품으로 지급해가며 상반기 183억원의 적자를 메운 덕분이다.

원유가격 결정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2013년 도입 후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15원의 인상요인이 있었지만, 선심 쓰듯 원유값을 동결한 작년 사례에서도 파행운영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유회사는 경영악화요, 소비자들은 비싼 우유를 마시며, 원가절감 유인이 없어진 낙농가들의 경쟁력은 악화됐다. 원유 수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시장의 균형을 가져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을 정부는 언제쯤 인정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