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보호' 선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현실은…'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의 역설
20대 국회 들어서자마자 ‘경제민주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야당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들고 나왔다. 명분은 ‘중소기업 보호’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 검찰 고발 권한을 갖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을 감싸면서 대기업의 횡포가 거세지고, 이것이 중소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책이 시장에 집행되는 과정에서 통용되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 보호’라는 선한 의도로 출발해도 뜻하지 않게 시장에서는 거꾸로 중소기업을 옥죄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보호’ 내세우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정책통인 최운열 의원은 지난 28일 전속고발권을 전면 폐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21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한 전속고발권 폐지를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말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개정안은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가맹사업법 등에서 명시하고 있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삭제하는 게 주요 골자다.

더민주를 비롯해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공정위가 독점하는 전속고발권이 대기업에 면죄부로 이용되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시민단체들도 “당연히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기업들의 불법행위에 (공정위가)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속고발권이 있는 한 공정위가 검찰 고발을 하지 않는 등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더라도 이에 불복할 수단이 없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중소기업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소송 남발로 중소기업만 피해

전속고발권 폐지는 애초 의도와 전혀 다른 부작용을 낳을 공산이 크다는 게 공정거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일반 시민단체나 소액주주, 심지어 경쟁사업자까지 ‘묻지마 고발권’을 행사해 기업들은 줄소송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그 피해는 엉뚱하게 중소기업으로 몰릴 수 있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기업들은 자체 법무팀과 대형 로펌에 자문하면서 검찰 수사에 방어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대응 능력이 약해 고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도 28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인력으로나 능력 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상대적으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훨씬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전속고발권 이미 약화돼

전속고발권이 이미 무력화됐다는 반론도 나온다. 지금도 감사원장, 중소기업청장, 조달청장 등이 공정위에 고발요청을 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거래 사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란 지적도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는 관련시장 획정, 행위자의 시장지배력 분석 등 경쟁제한성에 대한 엄밀한 입증 절차를 거쳐 법 위반 여부가 결정된다. 공정위의 혐의 입증 전에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에 나서게 되면 기업의 정당한 경영활동마저 위축될 것이란 우려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가 역풍을 맞은 2007년 하도급법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7년 8월 공정위는 ‘하도급법 위반사업자에 대한 고시’를 제정해 대기업은 이전과 달리 대금 미지급 등에 대한 자진시정을 하더라도 과징금을 부과받도록 했다. 이후 대기업의 자진시정 사례 감소로 “대금을 받는 게 더 어려워졌다”는 중소기업계의 하소연이 나왔다. 2009년 7월 공정위는 대기업을 겨냥한 조항을 결국 삭제했다.

■ 전속고발권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제기(기소)를 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일반 시민, 주주 등의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80년 도입됐다. 공정위 독점권 논란으로 2014년에 감사원 조달청 중소기업청에도 고발요청권이 주어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