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정부만 호조' 덕에 8년 만에 빚 없는 추경
정부 "성장률 0.2∼0.3%p 올라갈 것"…전문가 "추경보다 체질개선 필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가장 큰 관심사였던 추가경정예산(추경)이 결국 편성하는 쪽으로 결론났다.

세계 경제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변수가 결정타가 됐다.

다만 정부는 국채 발행 없이 세수 잉여금으로만 추경을 편성하기로 했다.

재정 건전성과 경기 부양 사이에 균형을 잡기 위한 정부의 포석이지만 일부에서는 정부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경기 부양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복되는 추경은 미봉책에 그치는 만큼 경제 체질을 바꿀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 10년 새 6번째 추경…재원만 74조원 투입

정부는 28일 발표한 2016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10조원 수준의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가 추경을 편성한 것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지난해에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돌출하자 정부는 11조6천억원 규모의 추경 카드를 빼들었다.

추경이 10조원 이상 규모로 2년 연이어 편성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2006년부터 10년간을 따져보면 올해가 6번째 추경이다.

2년에 한 번꼴로 본예산이 부족해 정부가 추경에 손을 벌렸다는 의미다.

올해 정부가 예상한 추경 규모까지 더하면 10년간 추경에만 무려 74조1천억원이 쓰이는 셈이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28조4천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이후 2013년 17조3천억원, 1998년 2차 추경 때 13조9천억원, 지난해 11조6천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올 초 추경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던 정부가 결국 추경을 선택한 것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암운이 더욱 짙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고용 한파 조짐이 일부 지역에서 감지되고 있는 데다 지난주에는 영국이 국민 투표로 브렉시트를 택하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정부는 대외 악재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과 민생 안정 사업 위주로 추경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구조조정 진행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업 사태와 지역 경제 위축에 대응하는 데 상당 부분 추경 예산을 편성할 계획이다.

◇ 실탄 마련은 초과 세수로…국채 발행은 배제

또 다른 관심사인 추경 재원은 초과 세수로 마련하기로 했다.

그간 정부는 추경 재원 마련 방법으로 주로 국채를 발행하는 방법을 써왔다.

그러나 단기 부양을 위해 재정 여건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번엔 아예 국채를 발행하는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대신 지난해 세금을 거둬들여 쓰고 남은 돈인 세계 잉여금과 올해 예상되는 초과 세수로 실탄을 마련한다.

정부가 국채 발행 없이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2008년 이후 8년 만이다.

당시에도 정부는 전년 세계잉여금(15조3천억원) 중 교부금 정산,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후 잔액으로만 4조6천억원의 추경 재원을 조달했다.

올해도 정부는 작년 세계잉여금을 활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4년 만에 세수 결손에서 탈출하며 2조8천억원의 세계잉여금 흑자를 냈다.

그중에서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국채 상환 등에 쓰고 남은 돈인 1조2천억원을 추경 재원으로 쓴다는 방침이다.

올해 들어 세금이 잘 걷히는 점도 국채 발행 없는 추경이 가능해진 이유 중 하나다.

이달 중순 정부가 발표한 '6월 재정동향'을 보면 올해 4월까지 누계 국세수입은 96조9천억원으로 지난해 1∼4월(78조8천억원)보다 18조1천억원 증가했다.

올해 3분의 1이 지난 시점에 정부가 한해 걷기로 한 세금 중 무려 43.5%가 실제로 걷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 진도율(36.5%)보다 7.0%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불황임에도 올 들어 세금이 잘 걷히는 것은 지난해 하반기 소비진작책에 따라 부가가치세가 늘고 기업의 영업이익 개선으로 법인세가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 세금은 2∼3개월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올해 전체적인 초과 세수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 속도에 비춰 작년 세계잉여금에 더해 올해 10조원 규모의 추경을 꾸리기에는 무리가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호승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상반기 진도율 상으로 보면 10조 이상의 여유 세수가 있어 보인다"라며 "무리한 예상으로 세수 결손이 나는 사태는 당연히 없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성장률 얼마나 끌어올릴까…일부 전문가 "추경 규모 부족"

정부는 10조원 규모의 추경과 공기업 투자·정책금융 확대 등 추경 외에 10조원 이상의 재정 수단을 추가로 동원해 총 20조원 이상 규모의 재정 보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계획대로 재정 보강이 추진되면 정부는 올해 성장률이 0.2∼0.3%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선 추경으로 경기 부양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 악화를 막으려고 국채를 발행하지 않으려다 추경 규모가 예상보다 작아졌다는 평가다.

실제 정부가 추경 계획을 발표하기 전 일부에선 추경의 규모가 15조원대가 될 것으로 봤다.

구조조정 이슈 때문에 20조원대 '슈퍼 추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해외 투자은행(IB)에서도 추경 규모가 20조원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씨티그룹은 추경 규모를 10조원으로 가정해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4%로 제시했지만 추경 규모가 20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며 그 경우 앞으로 1년간 성장률이 0.2%포인트 추가로 올라가리라고 봤다.

전문가들도 추경 규모가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추경은 최소 11조5천억원, 최대 26조6천억원이라고 봤다"며 "브렉시트를 고려할 때 다소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도 "재정건전성 유지와 경기부양이라는 상충되는 목표 사이에서 정부가 아직 방향 설정을 제대로 못 한 것으로 보인다"며 "추경 10조원은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규모"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난해에도 추경의 구체적인 사용처를 정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음에도 이번에도 추경 규모만 먼저 정해졌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추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6월 들어 돌발 변수에 따른 긴장감이 고조되자 부랴부랴 추경을 편성했다는 점도 지난해와 같은 모습이다.

추경 규모를 떠나 추경 편성 자체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계속해서 정부가 추경을 편성하는 데서 보이듯이 우리 경제 성장 둔화는 사이클 상의 문제가 아니라 잠재력 자체가 낮아졌다는 데 있다"며 "추경을 통해 당연히 성장률은 올라가겠지만 장기적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도 또 추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인위적인 부양을 줄이고 정책으로 잠재성장률이 회복되도록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porqu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