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결정한 다음날인 25일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는 런던 웨스트민스터궁 인근 거리에 영국 국기(유니온잭)가 걸려 있다. 런던AFP연합뉴스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결정한 다음날인 25일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는 런던 웨스트민스터궁 인근 거리에 영국 국기(유니온잭)가 걸려 있다. 런던AFP연합뉴스
유럽연합(EU)은 인구가 5억800만명으로 미국,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꼽힌다. 이런 EU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관문으로 영국을 택한 기업들이 지난 24일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로 결론 난 국민투표 결과로 충격에 빠졌다. 영국계 다국적 보험사인 리걸앤드제너럴의 나이겔 윌슨 최고경영자(CEO)는 “충격이 너무 커서 현실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고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기업들은 공장 및 법인의 영국 밖 이전, 투자 축소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미국 물류회사 세코의 마크 화이트 최고상업책임자(CCO)는 “물류기지 일부를 영국에서 유럽 대륙으로 옮겨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이 벌써 거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브렉시트로 영국과 EU 간 자유로운 물류 이동이 가로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 가장 큰 타격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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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EU를 떠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분야 중 하나가 자동차산업이라고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마이크 호즈 영국 자동차산업협회(SMMT) 최고경영자(CEO)는 “1980년과 1990년대만 해도 영국 자동차산업은 빈사 상태였다”며 “하지만 영국이 유럽으로 가는 관문으로 각광받으면서 외국인들이 영국 자동차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지금은 프랑스보다 자동차를 많이 생산하는 자동차 강국이 됐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은 영국에서 80만명을 고용하고, 영국 전체 수출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 롤스로이스와 미니를 인수한 독일 BMW,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인수한 인도 타타자동차 등이 영국 생산 공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차를 생산하면 무관세로 EU에 수출할 수 있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영국에 공장을 세운 이유다. 도요타자동차는 영국 중부 더비 공장에서 연간 19만대를 생산해 이 중 75% 정도를 EU로 수출한다. 닛산과 혼다도 각각 영국 선덜랜드와 스윈던에 공장을 두고 있다. 영국이 EU를 떠나면 EU로의 수출 제품에 관세 10%를 물어야 한다.

영국에서 1만4000명을 고용하고 있는 미국 포드자동차는 “유럽에서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드 주가는 브렉시트가 결정난 지난 24일 뉴욕증시에서 6.6% 하락했다. BMW는 “당장 롤스로이스와 미니 공장을 이전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유럽 판매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KOTRA 런던무역관은 도요타와 닛산도 유럽지역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26일 진단했다.

○유럽 내 공급망과 단절 우려

여객기 제조회사 에어버스는 국민투표 전 웨일스에 있는 공장을 프랑스로 옮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어버스는 영국에서 1만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에어버스는 비행기 날개를 만드는 영국 공장을 비롯해 각각의 부품을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전역에 분산해 생산하고 있다”며 “영국과 EU 간 물자와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유럽 내 부품 공급망을 재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국민투표가 끝난 뒤 “당장 공장을 옮길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영국 공장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덤프트럭 등을 생산하는 미국 캐터필러도 공급망 문제 때문에 영국 공장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폴 드레슐러 영국산업협회(CBI) 회장은 “EU가 지난 25년간 단일시장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기업들은 유럽 전역에 걸쳐 촘촘한 공급망을 구축해놨다”며 “브렉시트는 여기에 갑자기 칸막이를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CBI 소속 약 19만개 기업 회원의 80%는 브렉시트에 반대해 왔다.

JP모간은 브렉시트 시 런던에서 최대 4000명을 해고하고, HSBC은행은 최대 1000명을 파리로 옮길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금융회사들도 영국 이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이 EU 안에 있을 땐 ‘동일인 원칙’을 적용받아 금융사가 영국 한 곳에만 법인을 세우면 유럽 전역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여러 나라에 법인을 세울 필요 없어 비용을 아낄 수 있었지만 이제 불가능해졌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일본 게이단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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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유감이다. 영국에는 1000개 이상의 일본 기업이 진출했고, 투자액 누계도 10조엔(약 114조원)을 넘어선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일본계 기업의 사업 활동이나 사업 계획에 여러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