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등으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영진 전 KT&G 사장이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고 석방됐다. KT&G는 이번 판결로 ‘비리백화점’이라는 오명을 벗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현용선)는 23일 “민 전 사장에게 금품을 줬다고 한 사람들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민 전 사장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협력업체와 회사 임원, 해외 바이어 등으로부터 인사 청탁·거래 유지 등을 조건으로 현금과 명품 시계 등 1억79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1월 구속됐다. 법원은 2010년 청주 연초제조창 부지를 매각할 때 공무원에게 6억원대 뇌물을 주도록 지시한 혐의(뇌물공여)도 무죄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민 전 사장에게 돈을 줬다고 한 이들이 이미 다른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검찰의 추가 수사를 받자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해 8월 KT&G 협력사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KT&G가 후임 사장 공모를 시작할 때였다. “낙하산 인사를 보내기 위한 수사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공모를 시작하자 담배사업과 전혀 관련 없는 인사들도 지원했다. 일부 인사는 정권 실세와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KT&G 사장추천위원회는 내부 출신인 백복인 부사장을 사장으로 낙점했다. 이후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업계에서는 “낙하산 인사 실패에 따른 보복성 수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은 지난 1월 민 전 사장을 구속한 데 이어 6월에는 백복인 사장(불구속) 등 KT&G 임직원과 납품업체, 광고업체 임직원 등 42명(구속 15명)을 기소했다.

이번 판결은 백 사장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백 사장에게 금품을 줬다는 광고대행사 대표도 구속된 상태에서 백 사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뒤 풀려났기 때문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