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연상…"브렉시트 땐 엔화환율 달러당 94엔" 전망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파운드화가 폭락할 것에 대비해 미리부터 유로화나 달러화로 환전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런던 금융 특구인 시티오브런던에는 사람들이 환전소를 중심으로 장사진을 치고 있고 환전소에서는 최근 들어 거래액이 급등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우체국에 따르면 21일 환전액이 지난해 같은 날보다 74% 늘었다. 이 가운데 온라인 환전액은 전년 같은 날보다 무려 381% 뛰었고 직접 영업소를 찾아온 고객의 환전액은 49% 증가했다.

환전업체 트레블엑스는 같은 날 온라인 환전 주문은 전주보다 30% 뛰었고, 최근 이틀간 직접 매장을 방문한 사람도 20% 늘었다고 밝혔다.

외환 선불카드를 판매하는 페어FX도 이번 주에만 달러 선불카드 충전·판매액이 300% 늘었다고 설명했다.

환전소를 찾은 이들은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가결 결정이 나올 경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할 것을 우려해 환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환전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한 여성은 수천 파운드를 달러와 유로로 바꾸려고 한다며 "내 돈을 지키기 위해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는) 금요일까지 돈을 매트리스 밑에 넣어두겠다"고 말했다.

워털루의 국제 환전 거래소에서 일하고 있는 대니얼 프리오리는 평소보다 많은 손님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며 "사람들이 (투표일인) 내일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파운드화를 유로로 바꿔갔다고 덧붙였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의 재현을 우려하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회장직을 역임한 머빈 데이비스 경은 "모두가 2008년의 얼어붙었던 시장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나서서 자산을 사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가 무색하게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파운드화 가치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22일 오후 5시 28분 기준으로 파운드화 환율은 전날보다 0.9% 급등한 파운드당 1.4844달러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브렉시트가 부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행여라도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파운드화 환율은 파운드당 1.35달러까지 폭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도 20일 가디언에 기고문을 내고 "브렉시트 결정이 나면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는 급전직하해 '검은 금요일'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며 파운드화 가치는 15% 이상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시아 통화들도 타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메이뱅크는 브렉시트가 실현될 경우 엔화 환율은 달러당 94엔까지 내릴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엔화 강세가 속도를 낼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4엔 언저리에서 거래되고 있다.

엔화를 제외한 아시아 통화는 줄줄이 약세를 보일 전망이다.

달러 대비 한국 원화는 환율이 4.3% 오르고 중국 위안화 역외시장 환율은 5.2% 뛸 것이라고 메이뱅크는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