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6년 《부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 ‘혁신속도론’을 제시했다. “기업이 100마일의 속도로 변하는 데 비해 노조는 30마일, 정부는 25마일, 학교는 10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 법은 1마일로 변하기 때문에 이런 편차가 경제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게 요지다.
"중국 기업 시속 100km로 달릴 때 한국은 71km"
국내 기업인들에게 토플러의 혁신속도론에 빗대 회사의 현재 변화 속도를 물었을 때 어떤 답이 나왔을까. 중국 기업이 시속 100㎞의 속도로 변할 때 한국 기업은 시속 71㎞밖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구글 같은 최고 수준의 혁신기업이 시속 100㎞로 달리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 기업의 속도는 시속 59㎞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평가됐다. ‘빨리빨리’로 일컬어지던 한국 제조업의 혁신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4~5년 후면 중국에 밀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제조업체 300여곳을 대상으로 벌인 ‘우리 기업 혁신의 현주소와 향후과제 조사’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글과 같은 최고 혁신기업이 시속 100㎞로 변한다고 할 때 당신 회사의 변화 속도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평균 시속 58.9㎞라고 답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65.5㎞)와 전자(63.8㎞)의 혁신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편이었다. 반면 조선(57.7㎞), 철강(54.8㎞), 기계(52.7㎞)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업종은 체감 혁신 속도가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인들은 국내 제조업체의 혁신 속도가 중국에 뒤진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한국보다 혁신 속도가 빠른가’라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84.7%가 ‘그렇다’고 답했다. ‘중국이 시속 100㎞로 변할 때 한국의 속도는 어떤가’라고 묻자 평균 시속 70.9㎞라는 답이 나왔다.

울산의 반도체부품 기업 대표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3~4년 정도 나긴 하지만 중국이 인재를 대거 싹쓸이하고 있어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한 자동차부품업체 관계자는 “혁신 환경이 뛰어난 중국과 인도에 4~5년 후면 국내 업체가 밀릴 것 같다”고 했다.

○짧아지는 ‘혁신 유통기한’

기업인들이 느끼는 ‘혁신 유통기한’도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들은 ‘몇 개월 동안 신제품 개발 등 혁신 활동을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평균 37.9개월이라고 답했다. ‘1990년대와 비교해 혁신 속도가 얼마나 빨라졌는가’라는 질문엔 평균 4.7배라고 했다.

혁신을 위한 사회적 분담 비율은 ‘기업:정부:학계:국회’가 ‘6대2대1대1’ 비율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 화학제품업체 대표는 “미국처럼 기업 구성원이 동질적 수평관계로 엮일 때 직원의 변화와 대응력이 빨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상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국내 기업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해진 것만 하도록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시스템과 구시대적인 기업문화”라고 지적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