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엔화 가치가 적정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올 들어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15% 이상 올랐기 때문에 저평가 상태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엔화가 더 강세를 보이면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IMF가 세워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15% 오른 엔화…저평가 상태 상당 부분 해소", 일본 외환시장 개입에 힘 실어주는 IMF
◆엔화 가치, 1년간 최대 상승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IMF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이 (최근 엔화 강세에 따라) 중기적인 (일본 경제) 펀더멘털과 대체로 일치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실질실효환율은 물가 수준까지 감안한 통화의 실질적인 구매력(대외가치)을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 3년간 일본은행은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연간 80조엔 규모의 자금을 풀어(양적 완화) 엔저(低)를 유도, 미국 등으로부터 엔화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본이 엔화 약세 정책을 도입해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면서 주변국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올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지연과 안전자산 선호로 엔화 가치는 작년 말 달러당 120.42엔에서 이날 104엔대 초반으로 15% 이상 상승했다. 지난 1년간 주요 25개국 통화와 비교한 엔화의 실효환율은 23% 급등했다. 25개국 통화 중 실효환율 상승폭이 가장 컸다. 실효환율이 2013년 4월 일본은행이 양적 완화에 나서기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엔화 가치가 오를 때마다 “필요하면 확실하게 대응하겠다”며 강한 시장개입 의지를 보였다. 반면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은 “엔화 외환시장은 질서정연하다”며 엔저정책에 견제구를 날려왔다.

이런 가운데 IMF가 실효환율로 따져 엔화 가치가 적정하다고 밝힌 것이다. 데이비드 립턴 IMF 수석부총재는 “시장개입을 자국 내 정책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면서도 “시장 움직임이 무질서하면 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엔화 변동성이 과도하면 외환시장 개입을 할 수 있다”고 한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100엔 선 위협 땐 시장개입?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는 엔화가 강세로 흐르면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달 일본 수출은 글로벌 경기둔화로 전년 동월 대비 11.3% 줄어들면서 8개월 연속 감소했다. 수출 부진 속 일본 224개 주요 상장사의 1분기 경상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0%가량 줄었다.

기업실적 악화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도 일본 증시에서 짐을 싸고 있다. 지난 3월 말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보유 비중은 29.8%로, 1년 전보다 1.9%포인트 하락했다. 4년 만에 감소세다. 지난 1년간 외국인은 일본 주식을 약 5조엔어치 순매도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등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엔화가 달러당 100엔 선까지 오르면 일본 정부가 시장개입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IMF는 보고서에서 “엔화 강세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위험을 낮추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행이 목표로 하는 ‘소비자물가 2% 달성’ 시기를 정하지 않는 유연한 대응을 주문했다. IMF는 “현재 일본 정부 정책으로는 목표한 기간 안에 높은 명목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 기초재정수지 흑자 등을 이룰 수 없다”며 “구조개혁 없이 재정지출이나 금융정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실효환율

자국 통화와 여러 교역상대국 통화의 환율변동을 가중평균한 지수로, 자국 상품의 종합적인 가격경쟁력 지표가 된다. 실효환율에는 명목실효환율과 명목실효환율을 물가변동이나 생산비 변동으로 조정한 실질실효환율이 있다. 실효환율이 100 이상이면 기준시점 대비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에 대한 자국 통화가 고평가, 100 이하면 저평가된 상태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