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파업결의에 삼성 노협 명퇴저지 나서…현대중 노조도 파업절차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울산의 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가 노조와 노동자협의회 파업 예고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는 이미 조합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파업을 결정해 두고 돌입 여부와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정식 노조가 없는 삼성중공업에선 노동자협의회(노협)가 회사 측 구조조정안에 발끈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울산 현대중공업도 쟁의발생신고 등 파업을 위한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고 있다.

조선 3사 노조(노협)가 회사측의 강도높은 구조조정 안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물론 채권은행과 정부측 조치에도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어 조선업계는 위기감이 갈수록 높아지는 분위기다.

◇ 대우 노조 파업결의…삼성 노협 "명퇴 저지"
삼성중 노협 변성준 위원장은 지난 17일 아침 출근과 함께 각 사무실을 돌았다.

그는 직원들에게 "명예퇴직을 하지 말라"고 독려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명퇴를 요구하는 상사의 이름과 직책 등을 알려달라고 했다.

동영상으로 녹화해 둘 것도 당부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현대중공업 등 다른 조선사 노조에 비해 온건한 입장을 취했던 삼성중 노협도 이번엔 회사측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노협 관계자는 "회사가 너무 몰아치니 죽을 지경"이라며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노협은 이에 따라 오는 21일 오전 11시 거제시청에서 '희망퇴직을 빙자한 구조조정 저지와 자구안 철폐를 위한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노협은 "사측의 일방적인 자구안 발표와 삼성중 전체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고발하겠다"고 별렀다.

또 "거제지역 경제의 핵심역할을 하는 조선소 노동자들과 가족, 그리고 거제시민과 함께 현 상황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삼성중 노협이 그동안의 입장에서 벗어나 이처럼 강하게 나서는 것은 사측의 압박이 지나치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중은 이에 앞서 지난 15일 임원들의 임금 반납과 1천500명 희망퇴직 등의 내용이 담긴 세부 자구계획을 공개했다.

임원들의 경우 임금 30%를 반납해 회사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사측은 설명했다.

아울러 '수주절벽'에 따른 인력 감축의 일환으로 1천500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협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팀장과 부서장 등 간부들이 사무직 사원, 대리 등을 모아놓고 희망퇴직을 설득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라며 "사무직의 경우 노협 가입이 안돼 더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노협은 사측의 자구계획이 공개된 날 대의원회의를 열고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시나리오에 반발해 쟁의를 결의했다.

노협은 파업을 위한 찬반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협이 이처럼 강성 분위기를 띠어가자 사측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측은 노협과 대화채널을 열어두고 구조조정 내용 등을 놓고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중 관계자는 "자구안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놓고 노협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노조는 이미 파업을 결의한 상태다.

파업 돌입 여부는 아직 결정하진 않았지만 사태 추이를 봐가면서 파업에 나설 태세다.

노조는 투쟁 수위를 정하느라 회사측 태도는 물론 채권단과 정부측 분위기 등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원들이 압도적으로 파업을 찬성한 상황이니 집행부가 추후 상황을 봐가면서 파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13일과 14일 이틀간 치러진 파업찬반 투표에서는 투표에 나선 노조원 85%가 파업에 찬성했다.

노조는 최근 1조5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것과 관련해선 "입장 표명을 할 상황이 아니다"고 언급을 피했다.

노조는 특수선 분할 매각 반대 및 회사와 채권단, 노조가 참여하는 3자협의체 구성 운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협의체 구성이 원활하지 않거나 대화 채널이 중단될 경우 파업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이같은 사정 때문에 대우조선은 외관상은 잠잠한 편이나 내부적으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올해 임단협 협상은 매주 1차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채권단이나 회사 측, 노조 모두 상황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현대중…파업 절파 밟는 중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는 요즘 한창 뒤숭숭하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멈추지 않고 있는 조선 구조조정 때문이다.

생산현장은 여전히 크레인이 오가며 울리는 기계음과 선박 블록 용접 불꽃을 튀기며 평소와는 다름 없다.

노조사무실 인근 조선소 공장 지붕에 새겨진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글귀도 변함 없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나 쉬는 시간 직원들끼리 모이면 구조조정 이야기를 꺼내며 한숨을 내 쉰다.

3년 전부터 불어닥친 조선 위기가 회사 분위기를 살얼음처럼 바꿨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초 사무직 과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1천300여명이 옷을 벗었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또 다시 주채권은행에 낸 회사 자구안의 하나로 추가 희망퇴직을 받는 등 구조조정 칼바람이 이어졌다.

이번 추가 희망퇴직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생신직도 포함됐다.

생산직은 150여 명, 사무직은 1천200여 명이 또 다시 회사를 떠났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사무실에 얼마전까지 자리를 지켰던 동료 직원들의 빈자리가 늘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경영지원본부 산하 설비지원 부문에 대한 회사의 분사 방침까지 나와 직원들의 고민과 걱정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한때 세계 1위의 조선소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다.

이젠 어떻게 하면 살아 남아야할 지 한탄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 셈이다.

직원들은 "회사가 언제쯤 정상화될지"라고 걱정이다.

현대중공업 설비지원 부문에는 994명의 정규직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이들 전원이 분사 대상이다.

대상자 모두에게 분사 동의서를 받고 있다.

회사에 남겠다는 이들도 있지만, 20∼30년 일한 현대중공업을 떠나기로 한 직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더우기 회사가 구조조정을 위해 분사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다른 사업부문 직원들 마저 갑갑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끼리 모이면 우리 사업 부문도 분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전했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의 분사 방침에 "현대중공업에서 설비지원 부문이 분사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보전부, 동력부, 장비지원부 등 이들 지원 부문은 생산현장의 원활한 흐름을 담당하는 핵심 부서들"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회사의 분사는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반발, 결국 파업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17일 대의원들이 모여 쟁의발생을 결의한 뒤 다음 주에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도 한다.

노조가 올해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 과정에서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회사는 회사대로 힘겨운 상황이다.

주채권은행에 낸 자구안대로 구조조정도 계획대로 추진 해야하는데다 임단협 교섭은 노조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으로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노조의 투쟁에 적극 동참하려는 조합원들과 함께 회사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까지 간다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직원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은 회사를 살리는데 모든 힘을 모아야할 때인데 노조가 파업에만 힘을 모으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차라리 현실적으로 무리한 올해 단협 요구안을 철회하고 직원들 구조조정을 막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거제·울산연합뉴스) 이경욱 장영은 기자 kyung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