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험 상승에 '달러 가뭄' 조짐…유동성 공급방안 '만지작'

미국과 일본, 영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우려에 기준금리를 일제히 동결하고, 서로 긴밀히 협의하면서 브렉시트 대비태세에 들어갔다.

글로벌 자금시장에서 이미 브렉시트 공포로 인한 달러화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중앙은행들은 통화스와프를 활용한 긴급 달러 자금 공급에 대해 협의 중이다.

17일 각국 중앙은행들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일본은행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자산매입 한도 등 통화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데 이어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과 스위스중앙은행(SNB), 칠레중앙은행도 같은 경로를 따랐다.

영란은행은 전날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로 동결하고, 자산매입한도를 3천750억 파운드로 유지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스위스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0.75%로, 칠레중앙은행은 3.5%로 각각 동결했다.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의 현상 유지를 택한 배경으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영국의 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는 금리 동결 결정 시 감안한 요인 중 하나라면서, 이는 국제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미국의 경제전망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기자회견에서 "일본은행은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란은행을 비롯해 다른 글로벌 은행들과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으며, 국민투표에 따른 영향을 신중히 모니터링할 것"이라면서 "브렉시트 공포에 일본 국채 금리가 사상 최저로 하락했다"고 말했다.

스위스중앙은행도 "브렉시트를 결정하는 영국의 국민투표가 임박했는데, 이는 불확실성을 높이고 격변을 불러올 수 있다"면서 "세계 경제에 중요한 리스크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토마스 조던 스위스중앙은행 의장은 "만약 브렉시트가 일어난다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추가로 인하하거나 외환시장 개입을 확대하는 등 행동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영란은행은 브렉시트 발생 시 금융시장 경로를 통해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가능하다며 은행권에 추가 유동성 제공, 주요국 중앙은행들로부터 유동성 지원, 기타 정책 도구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브렉시트 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짓누르면서 단기자금시장에서는 신용리스크가 올라가 대형은행들이 달러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의 집계에 따르면 은행들의 단기자금시장에서 차용비용을 측정하는 FRA(선물금리계약)/OIS(금융기관간 하루짜리 초단기 외화대출 금리) 스프레드는 전날 2012년 이후 4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으며, 외화 달러 스와프 프리미엄은 작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이에 따라 미국·유럽·일본 중앙은행들은 브렉시트를 앞두고 파운드화 급락으로 인한 시장 불안에 대응해 금융기관에 긴급 달러화 자금공급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닛케이)은 전했다.

중앙은행들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미 연준과 일본, 캐나다, 유럽 중앙은행 등 간에 체결한 통화스와프 계약을 활용해 긴급 달러화 자금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외환 위기 등 비상시에 상대국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계약이다.

유럽 각국 중앙은행들은 시장안정을 위해 이미 파운드화나 유로화 자금공급에 나서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르면 22일 새로운 형태의 자금공급을 시작하며 영란은행은 14일 민간은행에 약 24억5천500만 파운드(약 4조929억원)의 임시 자금을 공급하는 등 만약의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달러화 기준 부채를 지닌 유럽 금융기관이 달러화를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으므로 이런 신용불안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달러화를 확보할 수 있는 안전망을 준비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라고 닛케이는 전했다.

일본은행은 현재 주당 한 차례 금융기관에 달러화 자금을 공급하고 있지만, 달러화 부족이 커질 경우 매일 자금을 공급할 예정이다.

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달러화 유동성이 고갈돼 불안의 연쇄 고리로 작용하면서 국제금융시스템 불안으로 연결됐었다.

한편 이집트 중앙은행은 이날 10년 만에 최고로 치솟은 물가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10.75%에서 11.75%로 1%포인트 올렸고,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6.75%에서 6.5%로 0.25%포인트 내렸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