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이노텍 호봉제 전면 폐지…다른 대·중소기업도 합류
정부 "연공제 폐지로 신규채용 확대" vs 노동계 "팀워크 붕괴 등 부작용 커"

16일 LG이노텍의 생산직 호봉제 전면 폐지 발표는 국내 기업 현장에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갈수록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LG이노텍은 이날 생산직 현장사원의 연공 중심 호봉제를 폐지하고 사무·기술직에만 적용됐던 성과·역량기반 인사제도를 확대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노조가 결성되지 않은 일부 대기업에서 생산직을 대상으로 인센티브제와 호봉제가 혼합된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운영한 적은 있지만, 호봉제를 전면 폐지하고 100% 성과주의 인사체계를 도입하기는 처음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금체계에서 호봉급의 비중은 여전히 높지만, 호봉급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기업도 꾸준히 늘고 있다.

호봉급 비중은 2012년 75.5%에서 2013년 71.9%, 2014년 68.3%, 지난해 65.1%로 매년 낮아지는 추세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노사합의를 거쳐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르노삼성자동차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호봉제 폐지를 통한 인사제도 개편에 노사가 합의했다.

휴대전화 부품업체 A사는 생산직을 포함한 전체 근로자의 성과연봉제를 전면 도입했다.

기존의 복잡한 임금체계를 기본연봉과 성과연봉으로 단순화해 성과 평가에 따라 성과연봉을 차등 지급한다.

자동포장기계 제조업체인 ㈜리팩은 관리직과 연구개발직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생산직은 호봉급을 유지했지만, 근속연수에 따른 자동 승급을 폐지하고 성과 평가를 바탕으로 한 차등 승급 제도를 도입했다.

반도체 장비업체 인베니아는 실제 역할에 부합하도록 직위체계를 기존 7단계에서 4단계로 단순화하고, 직위별 연봉 밴드를 설정했다.

각종 수당은 기본급으로 통합하고, 역량평가 후 성과연봉을 지급한다.

유전개발 지원서비스업체인 ㈜코엔스는 전체 근로자의 직무급을 도입했다.

직무 분석과 평가를 거쳐 직무를 60개로 분류하고, 각 직무를 4개의 직무등급으로 범주화했다.

각 직무등급 내에서 개인 성과평가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한다.

정부는 성과주의 임금체계 확산을 환영한다.

고용부 임서정 노사협력정책관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숙련도 향상이나 승진 등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 인상되는 경직된 임금체계로 인해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연공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1년 미만 근속자 대비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수준이 3.72배에 달한다.

유럽연합(1.6배)은 물론 우리와 임금체계가 비슷했던 일본(2.4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임 정책관은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 이어 민간기업들이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속속 도입하는 것은 노동개혁의 큰 성과"라며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정착하면 유연하고 합리적인 인력 운영이 가능해져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동계는 섣부른 성과연봉제의 도입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LG이노텍이 소속된 금속노련을 산하 연맹으로 거느린 한국노총의 김영준 대변인은 "장기 근속자의 임금수준이 너무 높다고 난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장기 근속할 수 있는 노동자가 과연 전체 노동자의 몇 %나 되느냐"며 "섣부른 성과주의 임금체계는 고용안정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근속연수는 평균 5.6년에 불과해 관련 통계가 발표되는 OECD 25개국 중 가장 짧다.

이탈리아(12.2년), 슬로베니아(11.6년), 프랑스(11.4년) 등은 근속기간이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다.

OECD 평균은 9.5년이다.

김 대변인은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팀워크 발휘가 가장 중요한 산업현장에서 어설픈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도입이 협업과 신뢰의 분위기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라며 "구의역 스크린사고 사망 사고에서도 나타났듯 성과 지상주의는 노동자 안전에도 치명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