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미국 통상압력] 미국, 한국산 철강·금속에 반덤핑 공세…중소기업까지 '저인망식' 조사
미국의 무차별적인 보호무역주의 공세에 한국 수출 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중국발(發) 공급과잉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철강·금속제품 분야에선 미 정부가 한국의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까지 반덤핑 조사 대상에 올렸다.

17일 반덤핑 청문회 주목

[거세지는 미국 통상압력] 미국, 한국산 철강·금속에 반덤핑 공세…중소기업까지 '저인망식' 조사
14일(현지시간) 무역협회 워싱턴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오는 17일 한국산 냉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 최종 결정에 앞서 청문회를 연다. 냉연강판은 열연강판, 내부식강(부식 방지표면처리 강판)과 함께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주요 철강제품이다. 2014년 기준 수출액은 총 2억6150만달러였다.

미 상무부는 지난 3월 예비판정 때 2.17~6.89%의 비교적 낮은 세율을 결정했다. 추민석 무역협회 워싱턴지부장은 “미국의 수입 규제 동향을 감안했을 때 이보다 훨씬 높은 최종세율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 상무부는 한국산 내부식강 제품에 대해서도 예비판정 때는 2.99~3.51%의 세율을 적용했다가 최종판결 때 8.75~47.8%로 세율을 대폭 끌어올렸다.

수출 51억원 기업도 제소

미국 정부의 반덤핑 조사는 한국 중소기업들까지 겨냥하는 ‘저인망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4월 중순 미 상무부는 페로바나듐(절삭공구 등에 사용되는 합금철) 생산 업체인 우진산업과 코반 등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 이들 업체의 미국 수출액은 지난해 1460만달러(약 173억7000만원)였다. 동종 미국 업체들은 한국 업체들의 덤핑 마진(수출 정상가와 수출 가격과의 차이)이 70%에 달한다며 그만큼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4월 말 구리 합금제품 ‘인동(phosphor copper)’ 생산 업체인 봉산에 반덤핑 예비판정을 내렸다. 봉산이 13~67%의 덤핑 마진으로 수출해 미국 업체에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구리를 녹일 때 쓰이는 인동은 인동 용접봉 등의 재료로 사용된다. 봉산이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금액은 431만달러(약 51억원)였다.

김창규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한국 업체들이 피해를 줄이려는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급증하는 美 신규 조사 건수

KOTRA 워싱턴무역관에 따르면 미국은 총 332건의 수입품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2015회계연도(2014년 10월~2015년 9월)에는 총 62건의 반덤핑 조사를 새로 시작했다.

이 같은 신규 조사 건수는 단일 회계연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건수다. 미국만 놓고 보더라도 14년 만에 최대다. 이 중 한국에 대한 규제 건수는 총 21건이며 7건은 조사 중이다.

이종건 KOTRA 워싱턴무역관장은 “이런 추세라면 미국은 올해 반덤핑 개시 건수 기록을 다시 쓸 것”이라며 “앞으로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KOTRA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면 슈퍼301조 등 초고강도 수입 규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환율 조작 등 불공정무역 행위에 대응한다는 취지에서 무역집행관 인력 세 배 증원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