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량 사상 최대지만 통화승수·유통속도는 역대 최저
가계는 부채로 소비제약·기업은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 안해
"효과 보려면 추가 인하·추경 이어져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리며 경기부양에 발 벗고 나섰지만 금리 인하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은이 금리 인하로 시중에 자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고 고여 있는 현상이 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계는 1천220조원을 넘어선 부채 때문에 소비를 하지 못하고 기업은 경기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어 금리인하의 효과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한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크진 않을 것이라며 기대만큼 효과를 내려면 추가 인하와 함께 정부의 추경 편성 등 재정 동원, 효과적인 구조개혁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기준금리 인하 효과 줄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는 금리와 환율, 자산가격, 신용 경로 등을 통해 효과가 확산된다.

한은이 금리를 내리면 단기시장금리와 함께 장기시장금리, 은행의 여수신금리가 순차적으로 내려가고 주가 등 자산가격이 상승하며, 환율이 높아지게 된다.

가계와 기업이 가진 자산 가치가 높아져 민간신용도 확대된다.

이런 경로를 통해 기준금리 인하 효과는 1차적으로 금융시장에 파급되고 이후 시차를 두고 실물부문으로 확산돼 기업투자, 소비 등 총수요를 늘리며 물가상승 압력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최근엔 한은이 금리 인하를 통해 돈을 풀어도 분기 성장률은 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연간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작년 말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2014년 8월과 10월, 2015년 3월과 6월 등 총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포인트 내린 점이 작년 경제성장률을 0.18%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한은은 기준금리 이하로 완화된 금융여건이 자산시장 이외의 실물경제를 개선시키는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고 밝혔다.

민간 소비 증가율이 낮은 수준이고 설비투자 증가세도 제한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인구구조 변화, 높은 가계부채 비율 등 구조적 제약요인과 신흥시장국 경제의 성장 둔화 등 대외여건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금리 인하의 실물경제 파급 효과가 과거보다 약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풀어도 돌지 않고 고이는 돈…통화유통속도 역대 최저

한은이 계속 돈을 풀면서 시중 통화량은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 4월 통화량(M2·광의통화)은 2천299조813억원(평잔·원계열)으로 집계돼 작년 같은 달보다 7.0% 증가하면서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통화유통 속도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올 1분기 통화유통 속도는 0.71로 전분기 0.70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통화유통 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시중통화량(M2)으로 나눠 구하는데, 한 나라의 경제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통화가 평균 몇 번이나 사용됐는지를 보여준다.

1990년 1.51에 달했던 통화유통 속도는 점차 하락해 1998년 0.88까지 떨어졌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0.76∼0.78 수준에서 움직이다 다시 하락하고 있다.

한은이 공급한 본원통화가 시중 금융회사를 통해 몇 배의 통화량을 창출했는지를 보여주는 통화 승수는 지난 4월 16.9로 떨어져 역대 최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통화 승수는 1999년 30을 넘기도 했지만 이후 하락 추세를 유지했고 2014년엔 20 밑으로 떨어졌다.

시중 통화량이 매달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며 급팽창 추세를 지속하고 있는데도 통화유통 속도가 최저수준을 맴도는 것은 시중에 돈이 돌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은이 발행해 공급한 5만원권의 환수율이 극히 저조한 것도 돈이 돌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한은이 돈을 풀어도 돌지 않는다면 기준금리의 기대효과는 과거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추가 인하와 재정역할 뒷받침돼야

전문가들은 기준금리의 인하로 소비를 진작시키고 투자를 늘리는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에 추가 금리 인하와 재정 등이 이어져야 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근본적인 산업구조 개편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계는 1천220조원을 넘어선 부채와 전세난 등으로 소비 여력이 없는 상태다.

기업은 자금이 부족하지 않지만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해 투자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돈을 많이 공급해도 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어떤 정책을 써도 효과가 확연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우리 경제가 늪으로 빠져드는 양상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기준금리를 연속으로 3∼4번을 내려도 된다"고 말했다.

정부도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꺼져가는 경기의 불씨를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현욱 SK경제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한은은 나름 할 일을 했으니까 정부가 추경을 하건 구조조정을 하건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노재현 기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