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대주주 지원없으면 법정관리" vs "1조원 마련 어려워"
산업은행과 한진그룹이 한진해운 지원 비용 부담을 놓고 기싸움에 들어갔다.

한진그룹은 4000억원의 추가 출자 방안을 제시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나머지 부족자금 6000억원가량을 추가 지원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채권단의 요구 수준(1조원)에 한참 못 미친다.

또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거스른 제안이라 단칼에 거절했다는 게 산업은행 설명이다.

○조양호 왜 한진해운 포기 못하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미 2조원을 쏟아붓고도 채권단 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간 한진해운을 끝까지 살리려는 것은 대한항공 때문이다.

"한진해운, 대주주 지원없으면 법정관리" vs "1조원 마련 어려워"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갈 경우 대한항공은 5000억원 가까운 손실이 예상된다. 대한항공이 갖고 있는 한진해운 영구채(2200억원어치)와 보유 지분 33.23%(지난 3월 말 장부가액 2620억원)를 모두 날릴 수 있다. 그 경우 부채비율이 900%가 넘는 대한항공 경영도 ‘동반 부실’로 흔들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일반 회사는 법정관리로 간 뒤 인수합병(M&A) 등으로 경영 정상화에 성공하면 주주나 채권자가 보통 투자 원금의 10~20%를 회수할 수 있다”며 “그러나 한진해운은 청산이 불가피해 투자금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대주주 지원없으면 법정관리" vs "1조원 마련 어려워"
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받으면 보유한 선박 가운데 외국 선주로부터 빌린 선박(용선) 93척을 돌려줘야 한다. 자사 소유 선박 67척도 대부분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게 된다. 한진해운의 주력 매출처인 미주(동아시아~미국) 노선 영업권 역시 해운동맹 탈퇴로 사라지게 되면서 한진해운은 터미널 지분만 관리하는 중소형 해운사로 전락한다.

○채권단 법정관리 압박

산업은행은 한진해운 대주주가 1조원 이상을 추가로 지원하지 않을 경우 경영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이 4112억원 규모의 추가 자구안을 100% 이행하고 용선료(선박 임차료) 협상 타결, 사채권자 집회 통과 등을 가정해도 추가 자금 부족액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한진해운 구조조정과 관련해 “채권단의 추가 지원이 어렵고 대주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기 때문에 산업은행도 더 이상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진해운의 유동성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해운업계에선 1200억원 수준인 한진해운의 연체 용선료가 이달 말 2000억원 가까이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4일엔 용선료 연체를 이유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크선 한진 파라딥호가 억류되기도 했다.

선복료와 항만 터미널 이용료의 연체가 계속되는 것도 문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전 세계에 밀려 있는 항만관련 이용료가 4000억원 수준”이라며 “선복료와 터미널 이용료가 밀린다고 배가 억류되지 않지만, 회사 신용도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한진그룹이 일단 제시한 4000억원가량의 자금을 어디서 마련할지도 주시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진에어 상장 △계열사 내 부동산 자산 매각 △조 회장의 사재 출연 등으로 4000억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진에어는 (주)한진칼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선두권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가 상장하면 대한항공은 상당한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은 계열사인 정석기업, 한국공항, (주)한진이 소유하고 있는 알짜 부동산 매각 시 1조원가량의 현금 창출이 가능하다는 게 부동산업계 분석이다.

안대규/김순신/좌동욱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