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실적 탄탄해진 동양매직…비결은 '주방가전+렌털' 두 개의 심장
2013년 10월 동양매직에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 동양그룹 내 계열사 다섯 곳이 줄줄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여파였다. 동양그룹 사태가 터지자 은행들은 동양매직에 빌려줬던 자금을 곧바로 회수했다. “이익을 잘 내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호소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흑자도산’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해낸 것은 동양매직 임직원들이었다. 자재 담당 직원은 공급업체들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며 결제 연기를 요청했다. 영업 부서는 거래처에 ‘대금 선지급’을 사정했다. 자금 여력이 있는 유통사들에는 “물건 받기 전에 미리 돈을 줄 수 없겠냐”고 읍소했다.

선급금을 받고 결제를 늦춘 자금이 100억원을 넘었다. 가까스로 회사를 꾸려갈 정도는 됐다. 덕분에 부도를 면했다. 강경수 동양매직 사장은 “꼼수 부리지 않고 신뢰를 쌓았던 게 빛을 발했다”며 “비즈니스는 신뢰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주방 가전서 30년 노하우 쌓아

동양매직은 1985년 동양시멘트 기계사업부에서 출발했다. 이듬해인 1986년 미국 가전기업 매직셰프와 기술 제휴를 맺고 가스오븐레인지를 국내에서 처음 생산했다. 사업이 안착하며 1990년 별도 법인으로 떨어져 나왔다.

동양매직은 식기세척기, 오븐 등 주방 가전에 강점을 보였다. 한때 국내 식기세척기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기도 했다. 가스오븐레인지는 주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스레인지 시장에서도 1위를 다툴 만큼 성장했다.

사업은 순항했지만 ‘외풍(外風)’에 휘둘릴 때가 많았다. 모기업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 탓이었다. 동양그룹은 2011년 동양매직을 동양메이저와 합병시켰다. 재무적 요인 때문이었다. 동양메이저는 당시 전방산업인 건설, 섬유 등의 업황이 좋지 않았던 탓에 재무상태가 나빴다. 우량 기업인 동양매직과 합쳐 부채비율 감소 등 재무구조 개선을 꾀했다.

사업적 시너지 효과가 약했던 두 회사의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동양그룹 사태 발생 이후 동양그룹이 해체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매물로 나온 동양매직은 2014년 사모펀드(PEF) 글렌우드-NH농협 컨소시엄에 팔렸다. 설립된 지 30년 만에 동양그룹을 벗어나 홀로서기에 나선 것이다.

동양그룹서 독립한 뒤 실적 날개

동양의 굴레를 벗어난 동양매직은 날개를 달았다. 2013년 2950억원을 기록한 매출은 2014년 354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작년에는 3903억원까지 늘었다.

인력, 제품 개발, 마케팅 등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 덕분이었다. 지난해 신규 사업인 생활가전 렌털(대여) 인프라 확충에만 840억원을 투입했다. 물류 창고를 늘리고 영업인력을 확충했다. 제품 개발에도 약 70억원을 투입했다.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전산 시스템 교체도 이뤄졌다. 5년 만에 처음 TV 방송 광고도 내보냈다. 배우 현빈 씨를 내세워 정수기 등 렌털 제품을 홍보했다. 광고·홍보비로만 70억원가량을 썼다.

우후죽순으로 늘렸던 제품은 대거 정리했다. 64개 품목에 달하던 것이 30여개로 확 줄었다. 음식물처리기, 토스터기 등 구색만 있고 매출 발생은 미미했던 제품을 없앴다. 대신 주력 품목을 정해 집중적으로 연구개발(R&D)에 나섰다. 작년 3월 슈퍼정수기, 10월 슈퍼청정기를 잇달아 내놨다. 제품 이름을 ‘슈퍼’로 달 만큼 기술력에 자신이 있었다. 정수기는 월 1만대 이상, 공기청정기는 4000대 이상씩 팔려 나갔다. 정수기는 저수조를 없애고 덩치를 작게 해 트렌드를 주도했다. 공기청정기에는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넣어 스마트폰으로도 제어가 가능하도록 했다.

내부적으론 옛 동양그룹 시절의 ‘흔적’을 지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조업 기반의 동양그룹은 권위적이고 조직 내 상하관계가 명확했다.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가전업계 문화와 맞지 않았다. 강 사장은 ‘자율’을 강조하며 각 부문장, 팀장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했다.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애썼다. 여기에 맞춰 인사 평가 시스템도 손봤다. 작년 3월에는 사옥을 이전했다.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모여 있는 서울 종로의 시그니처타워에서 나와 서울역 앞 연세세브란스빌딩으로 옮겼다.

‘캐시카우’ 주방 가전… ‘신성장 동력’ 렌털

동양매직은 2014년 말 ‘주방 가전과 렌털 사업을 두 축으로 키우겠다’는 사업 목표를 정했다.

‘캐시카우’인 주방 가전 부문은 제품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가스레인지와 전기레인지를 합친 ‘하이브리드 레인지’가 주력이다. 국내 최초 IoT 기능을 넣은 가스레인지를 곧 출시할 예정이다. 스마트폰으로 집 밖에서도 불꽃을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이다. 가스 불을 켜놓은 채 외출해도 밖에서 끌 수 있다. 전기레인지에는 터치스크린 방식 대신 기존 아날로그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50~60대 이상 사용자들이 디지털 방식에 익숙지 않다는 점을 감안했다.

빌트인 레인지 시장도 적극 공략 중이다. 신규 분양 아파트와 리모델링 주택에 빌트인으로 들어가는 레인지를 타깃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이 분야에서 사상 최대인 770억원을 수주했다. 올해는 1000억원을 넘긴다는 계획이다.

주방 가전에서 안정적으로 낸 이익을 기반으로 렌털 인프라 투자도 늘리고 있다. 방문판매 관리 인력을 2년 만에 약 600명에서 2000여명으로 늘렸다. 외주를 줬던 물류도 회사 내부로 흡수해 경쟁력을 높였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