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 적자 탈출 고맙다" 정몽원의 통큰 쾌척
한라그룹이 비상하고 있다. 최대 골칫거리였던 건설사 (주)한라는 올해 5년 만의 흑자 전환이 기대된다. 그룹 매출의 85%를 차지하는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는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육성해온 자율주행기술이 빛을 보고 있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사진)이 구조조정의 고통을 분담해온 한라 임직원 700여명(유상증자 참여 예상 인원)에게 자신의 주식 100만주를 무상으로 나눠주며 고마움을 표시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한라, 5년 만에 흑자 전환

한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부동산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주택사업에서 큰 손실을 봤다. 2010년 분양한 1700여가구 규모의 인천 ‘영종하늘도시 한라비발디’는 5년 가까이 미분양이 이어졌다. 시공을 맡은 경기 여주 세라지오CC와 제주 세인트포리조트 분양도 저조해 대규모 손실을 떠안았다.

이 영향으로 부채가 급격하게 늘면서 2012년 2343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지난해까지 4년간 누적 순손실이 총 9700억원에 달했다. 주력 계열사 만도가 2013년 한라의 유상증자에 3780억원을 투입하자 이 회사가 그룹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한라, 적자 탈출 고맙다" 정몽원의 통큰 쾌척
그랬던 한라가 올해 1분기 순이익 72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연간 2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이 날 것으로 증권사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미 수주한 사업들을 감안할 때 내년부터 이익 증가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흑자 전환 배경에는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있었다. 영종하늘도시 한라비발디 미분양은 지난해까지 임대 및 매매로 털어냈다. 서울 구로동 아울렛 하이힐은 현대백화점에 운영을 위탁했고 경기 화성 동탄 물류단지(47만3400㎡) 일부는 해외투자자 등에게 6500억원에 넘겼다. 정 회장은 700억원어치의 한라엠컴 주식을 한라에 증여하는 등 지원을 계속했다.

시흥 배곧신도시 개발사업은 한라 실적 개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2조2000억여원 규모 시흥 ‘한라비발디 캠퍼스’ 6700여가구를 전량 분양하는 데 성공했다. 2012년 1조3000억원에 달한 차입금도 이달 초 4000억원대로 감소했고 연말에는 3000억원대 초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자율주행 관련 매출 50% 증가

만도는 기존 주력사업인 조향·제동·현가장치 매출처를 지속 확대하는 동시에 새로운 먹거리인 자율주행기술에서도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만도는 매출의 50% 이상을 현대·기아자동차에서 거두고 있다. 하지만 2010년만 해도 이 비율이 70%에 달했다. 다른 거래처를 확보하면서 자연스럽게 현대·기아차 의존도가 내려갔다. 만도는 폭스바겐과 GM, 르노, 피아트·크라이슬러 등 주요 완성차업체 대부분과 거래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으로 성장한 중국에는 2002년 공장을 건설하며 기반을 닦았다. 창성, 창안, 지리 등 현지 업체들과도 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만도는 지난해 말 출시된 제네시스 EQ900에 고속도로자율주행시스템(HDA)의 핵심부품들과 긴급자동제동장치(AEB) 등 자율주행의 기반이 되는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제네시스 G80과 기아차 K9 등도 만도의 부품을 장착한다. 만도의 자율주행 제품 매출은 지난해 1500억여원에서 올해 2300억여원으로 5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업계에선 내다보고 있다.

정 회장은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을 국내 자동차업계 최고 수준인 연간 5% 이상으로 유지해 자율주행기술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집단 규제에서도 벗어나

한라그룹은 그동안 그룹 경영 리스크 중 하나로 지목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난해 7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마무리했다. 만도→한라마이스터→한라→만도로 이어지던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냈다. 2014년 9월 기존 만도를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와 사업자회사인 만도로 분리했고, 한라홀딩스에 한라마이스터를 합병시켜 정 회장→한라홀딩스→계열사의 단순한 체제를 완성했다.

이날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높인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도 한라그룹에 호재가 될 전망이다. 한라그룹 전체 자산은 작년 말 기준 8조1000억여원으로 상호출자제한 및 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에 지정돼 있다. 대기업집단에서 빠지면 법인세가 줄고 R&D 세액 공제 등은 늘어 그룹 전체 연간 순이익이 100억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강현우/김진수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