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 기준 상향] '대기업 규제'에 속태우던 카카오, 인터넷은행 진출 족쇄 풀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상향(자산 규모 5조원→10조원)으로 37개 그룹이 오는 9월부터 ‘규제 거미줄’에서 벗어난다. 이들 그룹은 공정거래법은 물론 대기업집단 지정을 원용해 적용하는 39개 법령의 규제 거미줄에서 벗어나 신사업 진출, 사업영역 확대 등이 가능해진다.

한창 성장 가도를 달리다가 지난 4월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서 손발이 묶인 카카오와 셀트리온 등은 “다시 뛸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대기업·중견기업들도 대체적으로 환영했다. 중소기업들은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대기업집단 기준 상향] '대기업 규제'에 속태우던 카카오, 인터넷은행 진출 족쇄 풀려
◆숨통 튼 카카오, 셀트리온

지난 4월 대기업집단 지정 이후 다급해진 기업집단 중 한 곳은 카카오다. 총 자산 5조830억원으로 대기업집단 중 막내(65위)인데 자산 규모 1위(348조2260억원)인 삼성과 같은 규제를 받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카카오는 특히 계열사 간 채무보증 금지(공정거래법), 벤처투자조합의 대기업집단 소속회사 투자 금지(벤처기업육성법) 등의 신규 규제를 걱정했다. 게임 등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계열사들이 자금조달에 애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계열사들의 사업 추진이 지연되거나 아예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며 “공정위의 빠른 제도 개선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카카오의 인터넷은행 진출도 순항할 가능성이 커졌다. 카카오는 현재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의 의결권을 4%만 보유하고 있다. 은행법이 비금융회사의 인터넷은행 의결권 지분을 4%로 제한하고 있어서다. 20대 국회에서 은행법을 개정해 인터넷은행에 한해 지분 한도를 50%까지 늘리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대기업집단은 4%(의결권 기준) 이상 취득하지 못하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9월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면 지분 취득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셀트리온도 한숨 돌렸다. 셀트리온은 대기업집단 지정으로 연구개발(R&D)비 세액공제 비율이 8%에서 3%로 축소되는 것(조세특례제한법)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셀트리온의 지난해 R&D 비용은 매출의 약 32%인 1940억원이다. 올해는 이를 3000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R&D 투자가 많고 기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세액공제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벤처투자 자금 유치도 한결 쉬워졌다.

◆사업재편 가능성 높아져

대기업집단에서 빠지게 된 그룹들이 자발적으로 사업재편에 나설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대기업집단 지정 해제로 8월 시행 예정인 기업활력제고법(일명 ‘원샷법’)을 적용 받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원샷법은 공급과잉 업종에 속한 중견·중소기업이 자발적으로 사업재편에 나설 경우 재정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그룹 오너가 보유 주식을 사업재편을 위해 계열사 주식과 교환할 때도 양도소득에 대해 과세이연특례를 적용한다.

재계에선 건설, 조선, 종이·목재, 철강, 화학 등이 공급과잉 업종에 속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중흥건설·현대산업개발(건설), 한진중공업(조선), 한솔(종이·목재), 동국제강·세아(철강), 금호석유화학·태광(화학) 등 8개 그룹이 원샷법 적용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감 몰아주기 기준은 유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은 종전처럼 5조원으로 유지된다. 이 규제는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가 30% 이상(상장사 기준)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대기업집단 기준만 올리고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 기준은 유지하는 것에 대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기업집단을 조건 없이 대기업집단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공기업은 출자 시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사전 협의가 의무화돼 있고 중장기 채무관리계획도 정부와 국회의 검증을 받는다”며 “2007년 공공기관운영법이 시행된 이후 공기업에 ‘공정거래법 수준의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